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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저명시인 김학송을 만나다

2019년10월31일 15:29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681

이 세상 그 어데를 가나 오나

나는 진정 자랑하고싶노라

내가 배운 가장 무거운 말로

…나는 조선민족이다!


조선민족…

천번 불러 다정한 그 부름속엔

얼마나 살뜰한 정이 깃들어있는가

선조의 넋! 부모의 피!

미래로 달려갈 후손들의 복된 숨결까지도…


이는 김학송 시인의 “나는 조선민족이다”라는 시의 일부이다. 1983년에 발표한 이 시는 요즘 우리말 시랑송  위챗계정에서 뜨거운 인기를 받으며 국내외 조선족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연변시인협회 부회장이며 연변의 저명한 시인 김학송은 “35년도 더 된 시인데 요즘 독자들의 반응이 참 뜨겁다는 것을 위챗계정 클릭수를 보며 새삼스럽게 느낀다. 시를 올린 지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벌써 조회수가 1만이상을 넘었다. 연변 뿐만 아니라 국내외 기타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여러 행사에서 이 시가 랑송되며 재조명 받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다루고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담은 시이다 보니 공감대가 넓어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어떤 평론가의 평론보다도 독자들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줄 때가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이외 김학송의 또 다른 대표작 “혼의 노래”도 관심을 받으며 조선족 사회에서 널리 랑송되고 있다. (이하 시의 일부)

장백산 아래 백도라지꽃이

하아얀 혼불로 타오르는 곳

여기는 연변, 조선족의 고향이라오


흰옷 입은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청자빛 행복

빚어가는 곳


나의 탯줄이 묻혀진 땅

나의 첫 꿈이 깃을 편 하늘


정녕 감격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산발이며 언덕

정녕 눈물 없이는

다가설 수 없는 내물이며 들판

아, 얼마나 많고 많은 사연들이 여기에서 피여나

래일로 래일로 뻗어갔던가!


우리 민족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담은 이 시는 민족의 자부심, 민족의 얼을 노래하고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았다. 이 시 역시 발표한 지 10년이 되였는데도 국내외에 거주하는 조선족 지역에서 애송되며 거듭 사랑을 받고 있다.

“문학작품은 지면에 발표하는데 그치지 말고 독자들의 기억속에 저장되고 거듭 애용되는데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 세월의 흐름에 묻히지 않는 작품 만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도문시 곡수촌에서 출생한 김학송은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 독서경력이 없고 작가를 위한 준비가 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시를 쓰고 싶어 도전했고 1980년 처녀작 “시골에서”라는 시가 <<연변문학>>에 등재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자 지금까지 꾸준히 문학인생에 몰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였다는 김학송시인이다.

“창작생활 초반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신만의 창작질서를 찾지 못해 힘들었다. 여러가지 곤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문학색갈을 찾기까지 7, 8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초반에 힘들다고 포기하면 절대 안된다.”

김학송의 시는 부모에 대한 효심, 고향, 민족을 노래한 시, 그리고 인생을 다룬 철학적인 시, 사랑시 등 제재가 다양하다.

“항상 마음이 가는대로 글을 쓰는 편이다. 특히 공동체의 집단의식, 귀속감을 많이 다루는 편이다. 시인이 왜 필요하냐고 한다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군중의 대표가 되여 잠자는 혼을 깨우고 사회를 위해 정서적인 호소, 문화적인 호소를 하는 게 시인이라 본다. 여러 곳에 흩어져 생활하는 조선족들이 희망을 갖고 뜨겁게 생활하도록 고무하고 위안해주는 게 시인의 몫이라 생각한다.”

작가생애 30여년동안 상술한 두 대표작외에도 “어머니의 병실”, “소망”, “가을 깊은 산속에서” 등 수천수의 시를 썼고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 <<고향엔 고향이 없다>> 등 27권에 달하는 시집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이밖에도 그는 가사, 아동시, 수필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썼는데 수필 “태산에 오르며”는 중학교 조선어문 교과서에 실렸다. 김학송은 선후로 해외동포문학상,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등 묵직한 상을 받으며 탄탄한 실력의 작가로 우뚝 부상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창작에서 고민이나 애로사항이 많이 없이 비교적 순탄한 편이라 오늘까지 온 것 같다. 향후에도 시기마다 쓰고 싶은 걸 쓸 것이다. 어느 곳에 있고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에 따라 부동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향후 보다 깊이있고 무게감이 있는, 공동체를 대표하고 공동체의 생각을 담은 작품을 쓰려 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꾸준히 생활축적을 하며 여러방면으로 학습을 하고 있다.”

현재 연변문학에 대해 김학송은 “활성기라고 하긴 어렵고 침체기라고 본다. 활성기냐 침체기냐 판가름할 수 있는 건 이 시대를 증언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있냐에 달렸다. 독자들 가운데서의 지명도, 인기로도 판가름 할 수 있다. 현재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고 문학장르도 많다. 대체적인 수준은 옛날보다 제고됐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주고 기억에 남는 작품보다는 대체적으로 평범한 작품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우리 문학의 전성기에 대해 그는 문화혁명 후 지난 세기 8,90년대 중반까지 보았다. 새 세기에 들어선 후 작품의 량은 많아지고 작가대오도 몇 배 확대되였지만 뾰족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적은 게 아쉽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에 대해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가? 이에 그는 “작가들이 흥분점을 찾지 못하는 같다. 생활 깊숙하게 뛰여들어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그 속에서 반짝이는 문학의 진주를 건져내야 하는데 현실에 접근하는 차수가 줄어들며 작품의 질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예전에 작가들은 농촌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고뇌, 삶의 희로애락을 문학에 담음으로써 피와 살이 생생한 글이 나왔는데 지금은 생활과 작가 사이 거리감이 생기며 한계에 부딛친다. 현실생활에서 체험의 질과 농도가 창작의 질, 창작의 온도, 창작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이게 안되니까 상호 괴리가 생기고 백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품력작들이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김학송은 사회적으로 문학창작에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관련부문에서 다양한 조치를 취해 작가들의 내공과 창작기량을 높이도록 동원하고 현지체험 등 여러가지 학습환경을 마련해주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우수한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는 상응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작가들의 적극성을 제고할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편 작가들도 자신의 소질을 제고하고 겸손하고 정직한 자세로 창작에 몰두하며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을 적는 데만 만족하지 말고 민족 공동체를 위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큰 뜻을 품고 문학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창작은 어려운 일이다. 창작가는 마음을 가다듬고 종교적 신앙처럼 창작을 위해 생을 바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명감을 갖고 부단히 자신의 수양을 닦으며 창작에 임한다면 어느 날인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가 생각한다”

김학송시인의 바람처럼 조선족 문단이 우수한 창작작품들로 뜨겁게 들끓기를 바라며, 뛰여난 걸작으로 조선민족의 마음이 하나로 달아오르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며 김학송시인과의 인터뷰를 마친다.

기자 배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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