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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 "삼로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2019년11월15일 15:5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1161

지난해 년말 화룡시 조선족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이 정식으로 사용에 투입되였다. 2008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삼로인”은 선진인물, 중간인물과 락후한 사상을 가진 인물 세류형의 로인이 한팀이 되여 익살스럽고 유모아적인 분장을 하고 노래와 춤, 독백과 론쟁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매 시기 당의 로선, 방침, 정책을 농촌의 사상교양과 결부하여 농민들에게 선전하는 독특한 쟝르의 예술형식이다.

“삼로인”은 알아듣기 쉬운 언어와 구수한 연변사투리를 결부해 농민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는 한편 선진인물과 신생사물에 대해 칭찬하고 락후한 사상과 틀린 생각을 가진 인물에 대해 풍자하고 바로잡아주는 해학적인 공연극이다.

항일전쟁이 결속된 후 경축문예공연이 성행되였고 대화, 노래형식의 문예종목이 환영을 받았다. 1950년 연변문예사업단 배우들이 당시 농촌호조합작운동과 협력하면서 농촌에 심입하여 군중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알기 쉬운 언어와 재미를 결부해 당의 사상과 정책을 선전하는 가운데서 “삼로인”이라는 독특한 쟝르의 예술종목이 산생되였다.

1957년 화룡 동성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삼로인”은 각 촌에서 순회공연을 거듭할수록 뜨거운 인기를 받았고 우수한 작품과 탄탄한 연기자대오를 구비하며 지난 세기 7, 80년대 고봉을 이루었다.

화룡시조선족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 최영희 관장은 “초반에 공연을 다닐 때 교통이 불편하고 무대복장도 없었으며 따로 련습할 공간도 없었다. 하지만 공연에 흥취가 있고 이 사업을 열애하기에 연기자들은 각 촌을 걸어다니면서 우리말로 그 단계의 당의 정책을 선전하고 촌민들에게 웃음을 주었다”고 했다.

삼로인 공연은 초반에 연변가무단에서 발단되였지만 조선족 인구가 점차 감소되고 이 업종에 종사하는 연기자들이 줄면서 우리 주에서 유일하게 화룡에서 간간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영희 관장은 “위문공연, 빈곤퇴치공연 등을 합치면 일년에 70회 정도 공연이 있다.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시작해서 60여년동안 꾸준히 군중을 대상해 각 촌에 내려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세기 조선족 마을에서 흥기하며 농민들에게 사상교양 역할과 더불어 큰 웃음을 주었던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 “삼로인”은 현재 농촌인구의 감소와 함께 소실되여갈 위기에 처했다.

1989년부터 “삼로인” 공연을 시작한 올해 60세인 최중철씨는 30년동안 연기자로 활약을 해왔다.

“예전에 관람객수가 가장 많을 때는 한개 소대에 100여명이 넘었다. 지금은 온돌연출을 가도 한개 생산대에 10여명이 될가 말가 하다. 연기자보다 관중이 더 적을 때도 있어 공연을 하면서도 마음이 쓸쓸하다.”

화룡시조선족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 무형문화유산 판공실 주임 김태현은 “전승인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조선어로 하다보니 공연할 수 있는 지역과 관람객 수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언어의 제한으로 널리 보급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목전 삼로인 구연조에 4명이 있는데 그중에서 올해 60세인 한분이 곧 퇴직을 앞두고 있어 후비력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도 농민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해마다 공연 회수는 줄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영희 관장은 “몇년전 삼로인 학습반을 꾸리고 각 촌에서 이쪽에 취미가 있는 분들을 추천받아 학습을 시켰다. 하지만 이분들이 배운 후 사용을 못한다. 편제가 제한되다 보니 문화관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삼로인’ 공연에 종사할 수 있는 전문 편제를 따로 내와야만 후비력량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삼로인” 극본창작에 힘 써온 김태현 주임은 “예전에 비해 창작품이 적다. 전에는 우수한 작품들도 많고 연출도 활발하게 했는데 지금은 연기자뿐만아니라 이쪽에 종사하려는 작가들도 줄어드니 극본도 적고 연출하기도 어렵다. 새 작품이 적으니 예전의 작품을 다시 수정해서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영희 관장은 “소품작품들이 문자화 되려면 힘들다. ‘삼로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농촌에서 자주 쓰는 소박한 언어다보니 방언, 사투리가 많다. 이를 책으로 출판하려면 문법화를 해야 하고 표준어를 쓰다보면 ‘삼로인’이 전달하려는 내용과 맥락, 그리고 재미가 떨어진다. 하기에 책으로 출판되기도 힘들고 전국에 보급하려고 한어로 번역을 하다보면 역시 재미나 웃음요소, 전달하려는 내용면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향후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연구하여 창작면에서도 옛 식으로 하지 말고 어떻게 새롭게 개변해서 삼로인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삼로인 공연팀은 우리 나라 문화 및 자연유산의 날을 맞아 천진에서 열린 전국 무형문화유산 곡예(曲艺)주 활동에 참가해 우리 민족언어로 “삼로인”을 전국에 알렸다.

김태현 주임은 “당시 공연은 조선어로 하고 한어로 자막이 나갔는데 번역을 하고보니 ‘삼로인’만의 맛이 살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 ‘삼로인’은 매 시기 형세를 반영하며 관람객들에게 기쁨도 주고 좋은 정책에 대해 소개하는 선전도구 역할 같은 존재인데 너무 진지하게만 하면 웃을 일이 없다. 촌민들앞에서는 마음대로 장끼표현을 하고 서로 소통하며 즐거움이 배가 되는데 큰 무대나 다른 곳에 가면 표준어를 쓰고 많은 언어를 줄여야 하고 한어로 번역하다보면 웃음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력사의 변천과 더불어 소실될 위기에 처한 “삼로인”,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여 더욱 잘 보호를 받고 길이 전승되여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향후 갈 길은 어디에 있을가?

그나마 현재 “삼로인” 전승인들의 적극적인 활약과 이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고무적이다.

“삼로인” 전승인 최중철씨는 “연기는 나의 흥취이다. 평소 우울한 일이 있어도 연기를 하면서 모든 고민과 번뇌가 사라진다. 관중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고 더욱 적극성이 생긴다. 관중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기쁠 때이다. 농촌에 내려가면 인지도가 높아 관중들이 자꾸 찾는다. 공연을 하면서 자호감을 느끼고 ‘삼로인’을 택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올해 50세인 또 다른 전승인 홍미옥씨는 1995년부터 “삼로인” 공연에 종사해왔다.

“힘든 일도 많았다. 지금은 조건이 좋아 차를 타고 농촌에 내려가지만 예전에는 수레에 앉아 각 촌을 돌아다녔다. 엄동설한에 너무 추워 솜바지를 얼굴에 감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외 성으로 공연을 떠날 때면 2~3개월씩 있다보니 아이가 자랄 때 함께 하지 못한 서운함도 있었고 가끔은 급히 농촌공연을 가다보면 밥도 못차려주고 엄마로서, 안해로서 제 역할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서도 연기를 하다보면 어느샌가 잡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관객들이 손을 붙잡고 너무 좋아해줄 때면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보람차다.”

이 두 연기자 외 다른 3, 40대 젊은 연기자들도 있어 “삼로인”의 전승에서 큰 역할이 기대된다.

이외 조선족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에서는 목전 여러가지 창작학습반, 소품학습반을 꾸려 삼로인 전승인 발굴 및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영희 관장은 “올해부터 학교에 진입했다. 국가급 무형문화재에 대해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료해하도록 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도록 하며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을 양성, 발전시키면 향후에도 이쪽에 종사할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다. 현재 매 주마다 수업을 설치했는데 ‘삼로인’ 전승인들이 직접 가르치고 양성하고 있다. 지금은 소학교에 들어갔는데 향후 중학교에도 진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2008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삼로인”은 국가로부터 전문 보조자금을 조달받아 지난해 조선족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을 세웠다.  목전 삼로인 전시관은 1층에 극장, 2층에 삼로인 전시관, 공연 련습실을 마련하고 3층은 민속문화 연구실로 되여있는데 향후 삼로인무형문화유산전시관은 민속문화를 보호, 전승하고 관광업발전을 추진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60여년동안 수많은 전승인들과 창작인원들의 로고속에 삼로인은 화룡시 뿐만 아니라 주급, 성급에서 묵직한 영예를 받아안으며 우리 민족문화예술에서 반짝이는 명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세기 50년대 산생한 “삼로인”은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고 문화적 변천을 거듭하며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몇대를 걸친 창작자들, 배우들의 피타는 노력과 견지속에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보호, 발전되여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수많은 감동과 웃음을 주었던 “삼로인”은 한세대 또 한세대 전승을 거듭하며 민간예술문화의 무대에서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얼마전 화룡시 룡성진 청호촌에서 선보인 "삼로인"-- <<이 좋은 세월에 왜서 혼자 살아야 하는가>>


기자 배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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