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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짜리 지페 속 녀 뜨락또르 운전사 별세

2020년01월19일 10:51
출처: 인민일보 길림신문  

1월 14일 오후 13시경, 새 중국의 첫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이며 제3조 인민페 1원짜리 지페 속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인 량군이 90세를 일기로 할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강습반의 유일한 녀학생, 새 중국의 첫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 되다

1930년, 량군은 흑룡강성 명수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부모들은 그녀가 어렸을 적에 그녀를 지주집 민며느리고 들여보냈다. 그렇게 1945년 흑룡강성이 해방을 맞아서야 그녀는 비로소 민며느리의 운명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량군의 아들 왕연병에 따르면 어머니 량군은 1947년에 혁명에 참가했는데 어느 한번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녀걸》을 보고 나서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아마 그 때로부터 어머니의 머리 속에 뜨락또르 운전사 꿈이 싹텄던 것 같아요.”

1948년, 흑룡강성당위에서는 북안에서 뜨락또르 강습반을 꾸렸는데 량군은 첫사람으로 등록했다. 이튿날 강습반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70여명 되는 학원들 속에서 녀학생은 달랑 그녀 혼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얼마 안돼 뜨락또르를 몰 수 있게 되였다. 그녀의 사적은 전국에 보도되였으며 1950년 6월, 그녀의 이름으로 명명한 새 중국 첫 녀성뜨락또르팀이 나왔다.

그녀의 뜨락또르 운전 모습 인민페에 찍히다

1959년, 첫 진의 최신식 국산 ‘동방홍—54’ 뜨락또르 13대가 흑룡강성에 운송되여왔다. 처음으로 중국 자체 제조의 뜨락또르를 보는 순간 량군은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격정을 억누르길 없었다. 단숨에 뜨락또르에 올라탄 그녀는 뜨락또를 몰고 신나서 한바퀴 빙 돌았다. 마침 그 때 그녀와의 인터뷰를 준비중이던 한 기자가 그 모습을 렌즈에 담았고 이어 신문에 발표했다. 1962년 제3조 인민페 1원짜리 지페 속의 그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가 바로 량군이다.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 신분에 평생 자호감을 느끼다

1990년 량군은 원 할빈시농기계국 총기사직에서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그녀는 줄곧 각종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많은 민간단체, 학교들에서 그녀에게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로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부탁해왔다. 그 때마다 량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달려갔다.

2년전 량군은 뇌경색, 페질환 종합증으로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후에는 또 부주의로 골절상을 당하면서 아예 드러누웠다. 량군은 병원에 입원해있는 기간 머리가 맑아질 때면 자신의 신간 서적 《량군전》에 정히 싸인까지 해서 의료진에 선물하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병마에 시달린 이 2년간 어머니는 줄곧 병마와 완강하게 싸우셨습니다. 매번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가 제일 기뻐하고 즐겨 듣는 이야기가 바로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첫 녀성 뜨락또르 운전사 경력을 언급하는 것이였습니다.” 량군은 오열하며 기자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량군로인의 영결식은 1월 16일 할빈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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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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