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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을 함께 합니다》 2017년 2월 3일 방송정보

2017년01월26일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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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일 금요일저녁 라지오생방송 《이 밤을 함께 합니다》에서는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추구로 배움의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차게 가꾸면서 인생경지를 쉼없이 개척하고 승화해온 원 연변의학원부속병원(연변병원)의 배해성부원장을 모십니다.
      많은 청취 바랍니다.

     뉴스종합방송 AM 1206
     문예생활방송 FM 94,9
     방송시간:
                     금요일 저녁 9시 5분

                                                                                                                       프로담당   리승호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배움의 인생

     

      꿈은 황홀하고 아름답습니다. 꿈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고 꿈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며 꿈은 진취적인 인생에 힘과 용기를 실어주고 꿈은 불굴의 의지와 도전력을 키워줍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의 긍정적에너지로 충만된 사람이며 꿈을 추구하는 사람은 생기와 활력으로 차넘치는 사람입니다.
       원 연변의학원부속병원의 배해성부원장은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추구로 배움의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차게 가꾸며 아름다운 인생경지를 쉼없이 개척하고 승화해왔습니다. 길림시 룡담구 기반가 대툰공사 기반대대의 한 순박한 농민가정에서 5형제중 맏이로 태여난 배해성은 소탈하고 락관적이며 생활력이 강한 부모님 슬하에서 순진하고 성실하고 배려심이 많은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개구쟁이때부터 그는 늘 농사일에 드바쁜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돌봐주고 가무일을 거들어주었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길림시조선족중학교에 진학하여 6년간 숙사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였고 초중부에서 고중부로 무난히 진학하며 공부에 열중하였습니다. 초중에서 학생예술단 무용대에 편입되였다가 아버지가 사준 바이올린을 배운후 악대로 넘으며 하향공연, 문예경연 등 활발한 학생예술활동을 하면서 예술의 꿈을 갖게 된 그는 더 높은 학구열과 더 많은 진취심으로 회화, 독서, 운동 등 다양한 취미를 살리면서 정신세계를 더욱더 풍부히 하였습니다. 호기심 많고 꿈많던 고중시절, 배해성은 많은 국내외명작들을 읽으며 문학가의 꿈도 가져보았고 《자본론》, 《정치경제학》 등 난해한 정치철학서적들을 구독하며 정치가와 철학가의 꿈도 가져보았습니다. 그런데 고중1학년을 다니던 어느 한 주말, 집이 그리워 학교숙소에서 귀가하여 어머님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폭식하고 급성위장염에 걸려 구토, 설사하면서 병원을 찾게 된 그는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의사의 거만한 태도에 분개한 나머지 장차 의사가 될 꿈을 갖게 되였습니다. 지향과 목표를 확정한 배해성은 과외시간에 리용하여 의학서적들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고 방학이면 도시락을 싸갖고 시교마을의 유명한 중의를 찾아 중약을 조합해주는 일을 도와주면서 침구를 비롯한 중의기본지식을 배웠습니다. 농망기에 농촌지원로동을 할 때면 농밭의 개구리를 잡아 해부도 하고 자기몸에 직접 침구실험도 하면서 차츰 침술을 제고한 그는 나중에는 소문을 듣고 급히 찾는 이웃이나 학교동창 또는 친척들의 웬만한 고통쯤은 손쉽게 덜어줄수 있었습니다.

     1964년에 고중을 졸업하고 전국대학통일시험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의학원에 붙어 대학의 꿈을 이룬 배해성은 독일과 일본에서 두번이나 의학박사학위를 따내고 독특한 의학 연구와 발명으로 국내외에 명성을 떨친 로기순박사와 같은 의학명인이 되려는 꿈과 포부를 안고 열심히 대학공부를 하면서 주밀하게 세운 계획을 실행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반장직무를 맡고 학생간부로 활약하며 한창 부푼 가슴으로 미래의 아름다운 설계도를 그려가고있을 무렵, 1966년에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이 폭발하였습니다. 홍위병들이 통판치며 대학교의 정상적인 질서는 파괴되였고 학업은 중단되였습니다. 대동란의 악몽은 대학2학년에서부터 3년간 지속되며 제일 소중한 황금시절을 놓치게 하였습니다. 5년 대학공부가 6년만에 마무되고 대석두림업국병원에 배치받게 된 배해성은 림상실천에서 많은 난제에 부딛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어이 유능한 의사가 되려는 꿈과 집념은 간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학교에서 못다 배운 학업의 유감을 풀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게 하였습니다. 책속에 파묻혀 살다싶이 하면서 림상기술을 고심히 련마하였고 주동적으로 상해화산병원의 연수기회를 쟁취하여 위경, 소화내과, 혈액과, 심장내과, 비뇨내과, 급진과 등 내과 전반을 거쳐 연수하였으며 전국제1차당뇨병연수반 학습에도 참가하였습니다. 2년반의 상해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전보다 더 자신있고 성숙된 모습으로 의료사업에 림하여 친절한 의료봉사와 높은 의술로 환자들과 동료들의 믿음과 총애를 받게 되였으며 198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습니다. 우수대학졸업생으로 진작부터 중시를 받아오던 배해성은 졸업하여 4년후부터 연변병원에서 계속 요구했지만 대석두림업국병원에서 놔주지 않아 15년이나 지난후인 1985년에야 경우 연변병원으로 전근할수 있었고 더욱 큰 꿈을 향하여 꾸준히 정진하게 되였습니다. 1990년에 일본나가사끼대학병원으로 류학가게 된 배해성은 의학전문가와 권위학자의 기반을 든든히 닦을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이룬 류학의 꿈을 소중히 여기며 낯설고 물선 일본땅에서 드디여 인정받고 귀국하여 10년후인 2000년에 재차 일본행을 하게 된 그는 더는 류학생신분이 아니라 중국교육부의 추천을 받고 당뇨병합병증 공동연구에 파견된 고급학자의 신분이였습니다.

       꿈을 위한 끝없는 도전과 배움의 인생을 유감없이 진하게 살아온 배해성은 일반의사로부터 주임의사, 교수로 점차 승진하며 드디여 환자들이 선호하고 존경하는 명의로 자리매김하였고 연구생도사로 되여 진지하게 의학석사생들을 양성하면서 림상연구소 주임, 연변의학원부속병원 부원장 등 중요한 의료행정직무를 맡고 많은 론문과 저서들을 펴내며 의료대오건설과 의료사업발전을 위하여 혼신을 다바쳐왔습니다. 이밖에 그는 또 여러 국가급 의학잡지의 편집위원, 론문심사위원, 전국 여러 의학학회 주임위원, 고문, 상임리사, 학술수석전문가, 특별강사 등 의학령역의 다양한 사회직무와 역할을 맡고 맡은바 직책을 다해왔습니다. 특수공헌상 등 여러 부류의 영예를 수많이 받아안은 배해성은 《중화의학학회과학연구상》등 십여개의 높은 의학상외에도 얼마나 많은 빛나는 상을 수여받았는지 모릅니다. 

      대학시절의 동창생과 결혼하고 오누이 두자녀를 곱게 키우며 단란한 가정행복을 알심들여 가꾸어온 그는 세 손군까지 본 지금까지도 퇴직이라는 개념과 계선이 따로 없이 의료사업에 아낌없는 기여를 하며 드바삐 보내고있습니다. 안해와 함께 연길시성제병원을 운영하며 각종 사회공익활동에도 적극 동참하고있는 그는 연길시위생사업일군협회 상무리사에 이어 고문직을 맡아오면서 내부간행물을 창간하여 의료사업일군들의 련대성도 강화하였고 개체문진부들에서 의료보험실무도 볼수 있는 어려운 의료난제들도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어린 시절의 다양한 꿈과 취미를 되살려 생활을 보다 질적이고 문화적으로 가꾸어오면서 가사, 시 등 문학작품을 짬짬이 창작, 발표한 배해성은 중의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중의학이나 조의학에 대한 연구와 학습도 견지해왔습니다.

       꿈이 곧 배움이고 배움이 곧 인생수업인 배해성에게 있어서 인생 그 자체가 바로 인생공부입니다. 무언가 이루어내려는 아름다운 꿈은 청춘과 생명의 활기를 북돋우며 배움과 실천적노력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확과 결실의 기쁨을 안겨주며 인생 성공과 행복을 노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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