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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사랑에 삶의 희망 찾은 골수종양선생: 행복해요

2017년05월12일 09:04
출처: 길림신문   조회수:78

2016년 2월, 시름시름 앓던 나는 골수종양이란 진단을 받게 되였다. 하늘이 무더지는듯한 정신적 충격과 순간마다 겪어야 하는 뼈를 깍는듯한 육체적 고통은 내 삶의 희망도 즐거움도 용기도 송두리채 앗아갔다. 육십 평생 파란만장한 인생, 기구한 운명에도 꿋꿋이 버티고 열심히 살아왔으며 누구에게 악한 일을 한적 없건만 어찌 나에게 이런 크나큰 고통을 주는가고 남편에게 호소하기도 했다.가족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고통은 계속되었고 증세는 호전될줄 몰랐다.

그해 6월의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돌아온 나는 움직일 수 없는 몸 그대로 자리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허망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따르릉ㅡ”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였다. 전화기 맞은 편에서 청아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저 선생님의 제자 리광선이예요. 선생님....”

너무 뜻밖에 20여년전 제자의 전화를 받고나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하지만 광선이는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얘가 왜 이러지?” 나는 의아하고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후에야 그들이 내 사연을 어떻게 알게 되였고 동창그룹채팅방을 어떻게 설립하였는지 그 자초지종을 알게 되였다.그들은 내가 휘남현조선족중학교에서 초중 담임선생으로 있을 때 가르쳤던 학생들이다. 돌이켜보니 어느덧 25년이란 세월이 흘었다. 그동안 가끔 연락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퇴직하고부터는 거의 연락이 두절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렇게 하루밤 사이에 나에 대한 소식은 전파를 타고 우리 제자들 사이에 퍼졌고 오래동안 헤여졌던 동창들이 놀라운 속도로 20여명이나 위챗이란 장에서 모이게 되였다. 위챗그룹채팅방이 만들어지자 나의 학생인 동화와 월매는 그날로 급히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병마와 이기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우리도 도움이 되자”면서 친구들을 동원하여 적지 않은 금액을 모았다.

그리고 장춘에 있는 학생 리광선에게 위탁하여 빨리 나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이에 광선이는 아침 일찍 급히 차를 몰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장춘에서 우심정진까지는 150키로인데 차로도 근 2시간 거리였다. 그는 내가 알면 거절할가봐 낯선 고장을 물어물어 왔던 것이다. 근처에 와서야 선생님 댁이 어디냐고 전화로 물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원래 하던 방식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페를 끼치기 싫어 가족들에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일렀고 집에 있으면서도 먼곳 작은 아들네 집에 있다고 하였다.

“선생님, 지금 제가 선생님 댁 근처까지 왔어요. 선생님이 안 계시면 선생님 댁 문꼬리라도 만져보고 갈거에요. 저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반 20여명 동창들의 간절한 마음과 념원을 안고 여기까지 왔어요. 많은 동창들이 한국,일본, 국내 여러 곳에서 선생님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선생님 우리 어서 만나요.”

“얘,광선아!네가 어찌 여기까지……”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제자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랴? 광선이를 보는 순간 나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잊고 눈물번벅이 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안깐힘을 썼다 .

이때 남편이 정신없이 달려와 나를 말렸지만 한달음에 달려가 제자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더없이 안타까울 뿐이였다. 곁에서 사생의 눈물겨운 상봉 장면을 목격한 남편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부터 제자들은 병상에 누워 운신하지 못하는 나에게 매일 하루와 같이 나름대로 시간을 내여 위챗으로 의미있는 문자와 화면을 보내면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였다.

“더운 여름철에는 무더위에 주의하시라고, 추운 겨울철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감기 조심하시라고, 밥도 잘 챙겨드시고 건강 잘 지켜동창모음에도 참석하시라고, 한국, 상해, 청도에 관광오시라고...”

10월이 되여 날씨가 서늘해지자 상해에 있는 학생 전금화는 그토록 바쁜 와중에도 짬짬히 시간을 내여 상점을 누비며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다. 동북에는 춥기 시작할텐데 누워 몸을 잘 움직이지못하니 몸을 따스하게 해야 한다면서 두터운 털양말과 간편하게 몸을 감쌀 수 있는 큰 숄, 또 상해 특산인 옥수수 수염차, 사탕, 과자 등 간식, 핸드폰과 털레비죤만 보면 시력에 안 좋으니 때론 책도 보시라면서 소설책을 여러권 우편으로 보내왔다. “선생님, 저의 자그마한 성의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선생님은 우리 제자들이 웃 어른께 효도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덕은 쌓은대로 간다’고 다 선생님이 쌓은 덕이고 저 또한 자식들한데 본보기를 보여주고 나름대로 덕을 쌓는 거라고 생각해요.”

해연이와 홍련이는 내가 학생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초중때와 현재 모습을 담아 전자사진첩을 정성껏 만들어 위챗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설명절이 다가 오자 한국에 있는 동화와 월매는 명절에도 찾아뵙지 못하여 미안하다면서 인편으로 천여원의 돈을 보내면서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고 꼭 건강 회복하라고 하였다.

어찌 그뿐이랴, 그들은 나의 생일날까지 잊지 않고 장춘에 있는 광선이를 시켜 생일단설기를 사가지고 와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려주기도 했다. 식사후에는 나를 휠체어에 앉혀 공원구경까지 시켜주면서 많은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들은 제 부모에게도 미처 이런 효도를 하지 못했을텐데 20여년전 초중 담임선생에게 이토록 지극정성이라니 …… 그들을 가르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다만 교자로서의 양심과 담임으로서의 직책을 했을 뿐 그들에게 특별하게 잘해준 것도 없거니와 많은 비평과 짜증만 낸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그들의 사랑에 감동되여 고맙다고 할 적마다 그들은 도리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간절한 바램은 선생님의 건강회복입니다. 위챗에서라도 이렇게 매일 안부 드릴수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반 친구들이 20년후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착하고 고마운 제자들인가! 내 무엇으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랴! 이 세상에 선생은 많고많지만 나처럼 제자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불평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으련다. 나에게 소리높이 자랑할만한 착하고 훌륭한 제자들이 있는 것으로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침대에 누워 운신조차 하기 어렵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중증환자가 이제는 많이 호전되여 집안에서 살살 걸을 수 있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되였다. 이것은 물론 남편과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덕분이며 친척, 친구들의 배려와 도움의 덕분이며 더우기 우리 제자들이 무한한 사랑으로 위로하고 응원해준 덕분이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 이것만이 내가 제자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나는 이 글을 쓰는데도 장장 3개월이 걸렸다. 오늘 이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나의 마음은 더없이 후련하다. 이제 눈을 감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들의 앞날에 영광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 홍분교(휘남조중 퇴직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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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김련화]
태그: 생님  에게  으로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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