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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2017년09월14일 07:59
출처: 연변방송   조회수:22

뿌리없는 나무가 없습니다. 뿌리없는 나무는 잎이 필 수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 어디를 가도 변함없는 고향정은 고향땅을 향한 《락엽귀근》의 애틋한 마음과 보답의 효심이 되여 귀향길을 재촉합니다. 잘살아도 내고향 못살아도 내고향, 고향은 언제나 따뜻한 보금자리이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입니다.

도문시 월청진 기신촌촌민위원회의 김진권 주임 겸 당지부서기는 귀향창업으로 고향땅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새농촌건설과 농촌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며 고향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4남매중 막내로 자란 김진권은 기신촌 본마을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월청에서 초중공부를 마친후 학업을 그만두고 향진기업 로동자로 4년간 일하였습니다. 20살부터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무언가 손재간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한 그는 3년후인 1992년에 도문에서 차수리부를 경영하는 외삼촌을 찾아 가 일손을 거들어주며 차수리기술을 배웠습니다. 차수리업도 한생 직업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김진권은 1995년, 26살에 물자회수공사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수로 손재간이 많고 마음이 어질고 배려심이 많아 남을 돕기를 즐기신 어버지의 유전을 받아 어릴 때부터 어떤 재간이든 인츰 배워내고 익혀 낸 김진권은 10대에 벌써 리발, 복장, 용접, 산소절단 등 재간, 기능을 익혀 남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회수공사에서 일하면서 차츰 물자수구체계와 관리운영방법을 장악한 김진권은 덩치큰 쇠덩어리도 자체로 척척 산소절단하며 사고 한번 없이 위험한 일들을 손쉽게 해내군 하여 회수공사 책임자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되였습니다.

1997년에 훈춘 하다문향의 한 예쁘고 착한 처녀와 결혼한 김진권은 세집살이를 하면서 큰누님으로부터 넘겨받은 수구소를 안해한테 맡기고 자기는 계속 회수공사에 출근하였습니다. 수구소를 운영하려면 우선 사전에 돈을 갖추어야 하였는데 장사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김진권은 솜사탕기계를 만들어 안해한테 주어 수구소 근처에 있는 학교대문앞에서 장사하게 하였고 자기는 회사일을 하는 한편 짬짬이 안해를 거들어 부지런히 수구소의 잔일들을 찾아 하였습니다. 새벽 날밝기전에 일어나 자정 넘어까지 분주히 지내다 보면 한국에 가 로무를 하는 사람 못지 않게 땀을 많이 흘리며 된로동을 하였습니다. 회수공사 책임자는 성실하고 근면한 김진권이 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었는데 한번은 창고정리를 맡기면서 그 안의 나머지 물건을 몽땅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김진권은 창고를 깨끗이 청리하고 단번에5천여원의 목돈을 손에 쥐게 되였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고 수중에 돈이 있게 되자 수구소 운영도 잘 풀려나갔습니다.
1998년, 애탄 노력끝에 드디여 수구소 옆에 자그마한 살림집을 하나를 사 세집살이를 면하게 되였고 전기밥가마와 가스통밖에 없던 집에 텔레비죤도 갖추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결혼하여 2년 만에 귀여운 딸애를 보게 된 김진권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더더욱 힘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한국로무를 가려고 회수공사에서 나왔으나 출국수속이 힘들게 되자 아예 한국행을 포기하고 파가이주한다는 헛소문에 헐값으로 넘겨주는 옆집 슈퍼마켓을 맡아 운영하였습니다. 운 좋게도 3년이 넘도록 파가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대부금까지 내 상품을 구전히 갖추어 놓고 알심들여 경영한데서 상점은 날이 갈수록 흥해졌습니다. 집에 앉아 바로 수구소와 슈퍼마켓을 돌볼 수 있어 편리하였고 자금회전이 거침없어 수익은 눈덩이 굴리듯 하였습니다.

경제형편이 좋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차츰 고향마을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김진권은 2001년에 귀향하여 기신촌 가공공장을 회수하고 기름방을 운영하면서 된장, 간장도 만들어 보고 소사양업도 시도해 보았지만 기름방외에는 모두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남들이 다루지 않는 땅을 하나하나 회수하여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한족들을 로무일군으로 채용하면서 알심들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논밭에서 나는 농산품을 가공하여 직접 시장에 내다 파는 한편 정미기계를 가설하고 주변 농민들의 벼를 받아들여 가공업을 벌였습니다.

2009년에 《고향농민전업합작사》를 설립하고 30여명 일군을 채용해 고향에서 생산되는 입쌀이며 여러가지 잡곡 등을 가공한 농산품을 《곡구미》브랜드상표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2010년에 10만원을 투자하여 합작사를 확장건설하기 전후 김진권은 짬짬이 각종 양성반에 참가하여 상관 운영관리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익히면서 《고향농민전업합작사》를 잘 운영하여 명실공히 고향의 경제진흥에 한몫을 톡톡히 하였는데 2006년에 《새농촌건설 농민치부선줄군》이라는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2010년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김진권은 마을의 빈곤호들을 잘 부축해 주는 한편 어렵게 지내는 독거로인들이나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었으며 로인절을 비롯한 크고작은 명절기념행사나 여러가지 농촌문화공익활동에 적극 자금적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후한 인심으로 덕을 많이 쌓은 김진권은 2016년에 민주선거로 기신촌촌민위원회 주임 겸 당지부서기로 당선되였고 당대표, 인대대표로 활약하였습니다.

귀향한 16년 사이 김진권은 수차 촌집체경제발전선진개인, 새농촌건설농민치부선진개인 등 영예를 받아안았으며 주와 시의 우수공산당원칭호도 수여받았습니다.

지난해에는 특등로력모범의 영예와 《도문좋은사람》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습니다.

2017년 연변민족단결진보선진개인의 영예를 받아안은 김진권은 귀여운 딸애가 중앙미술학원에 붙는 경사까지 겹치였는데 더 많은 정열과 재능을 조화롭고 화목하고 살기 좋은 고향건설에 몰부을 다짐으로 바짝 신들메를 조이고 있습니다.

《제 보금자리를 사랑할 줄 모르는 새 없다.》는 말과 같이 모두 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고향에 보답하려는 실천으로 나서자란 정든 고향을 굳건히 지켜간다면 뿌리깊은 나무가 가물을 안타듯이 고향은 영원히 따스한 보금자리로 남아 타향살이에 지친 정처없는 나그네들을 반겨 맞을 것입니다.

연변방송 리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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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습니  고향  진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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