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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원작 2018년05월15일 16:39
조회수:965



행운과 불운은 상대적 존재입니다. 행운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운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 반면에 또 행운스러운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행운과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는가입니다. 행운과 불행이 아무리 숙명적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운명을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새로이 개척할 용의가 없다면 행운을 더 밝고 아름답게 가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행에서는 더구나 헤여나올 수 없습니다. 운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고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안도현《도시음악다방》의 최매화 경리는 주어진 운명과의 과감한 도전으로 간난곡절을 이겨내고 자주창업의 성공을 이루어내며 뜻있고도 참된 인생을 엮어 왔습니다.



도문시 홍광향 하가촌(현재의 월청진 하가촌)에서 태여난 최매화는 오누이중 맏이로 집안 어르신들의 많은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한생 촌장으로, 우수당원으로 지낸 아버지와 《녀성모범》, 《가정모범》, 《연변주 훌륭한 며느리》 등 영예를 수차 받아안은 어머니의 훌륭한 성품과 실천적모범을 많이 보고 배워 온 최매화는 어려서부터 성실하고 진취적이고 남달리 배려심이 많았습니다.



유치원시절부터 애들 속에서 류달리 빼여나고 돋보이는 성품과 성정으로 늘 부반장, 반장직을 맡아 온 최매화는 공부도 남달리 잘하여 소학교 때에는 대대장으로 지냈는가 하면 늘 학교 모범학생으로 당선되였으며 지덕체가 구비된 우수학생으로 도문시 《3호학생》의 영예를 수차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전 시적으로 최고 점수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초중에 진학한 최매화는 집을 떠나 하숙생활을 하며 공부하게 되였는데 고중1학년에 올라가 심한 빈혈증으로 몇달간 휴학하는 바람에 학습성적이 크게 뒤떨어지게 되였습니다. 뜻밖의 좌절로 인생시련을 겪게 된 최매화는 1993년에 고중을 졸업하고 바로 안도에 가 옷매대를 경영하는 고모를 도와주면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4년간 고모를 도와 매대를 봐주면서 점차 독립 의지와 신심이 생긴 최매화는 대담히 개인으로 옷매대를 운영해 보기로 작심하고 부모님께 자기 의사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적극 찬성하면서 그 당시 농촌살림으로는 거액이라고 할 수 있는 3천원 돈을 선뜻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최매화는 부모님의 따뜻한 기대에 힘입어 어떻게 하나 자립에 성공해 보려고 모지름을 썼습니다. 하지만 치렬한 시장경쟁은 사회경험이 적은 20대 초반의 최매화로 하여금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옷매대 경영에서 참패한 최매화는 넘어진 자리에서 기어이 다시 일어나 보려고 근 3년간이나 시장안의 이집저집 매대를 대신 봐주었습니다.



학교근처에 세집을 잡고 근근득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최매화는 문득 중학생시절에 기숙사생활을 하던 기억이 떠올라 시골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집을 운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생 3, 4명을 집에 받아들여 하루 세끼 알심들여 숙식을 챙겨주다가 나중에 학생이 10여 명으로 늘어나자 160평방메터 되는 큰 세집으로 옮겨가 대리학부모역할까지 하면서 애들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몰부었습니다.



애들의 식탁에 더 맛나는 음식을 올리기 위해 전문 료리책과 영양학책을 구입해 짬짬이 읽으면서 료리재간을 늘인 최매화는 은연중 료리에 대한 자기의 남다른 취미와 숨은 장끼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음식업을 펼쳐 볼 소망을 갖게 된 최매화는 때마침 한 언니벌 되는 분이 미국행을 하면서 자기가 운영하던 다방을 내놓게 되자 인츰 그 영업집을 넘겨 받아 《금제다방》을 운영하게 되였습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최매화는 한국어수능시험을 보았었는데 시험에 합격되여 한국행을 할 기회를 얻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다방운영이 한창 잘되는 시점에 한국행은 그저 차일피일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안타까와 그동안 자기가 운영하는 무역회사를 돌보면서 함께 다방을 봐줄테니 어서 한국으로 다녀오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남편한테 다방운영을 맡기고 한국에 간 최매화는 간고한 로무현장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이처럼 힘들 바에는 차라리 귀국하여 그만한 로동대가로 얼마든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들도 엄마 그리운 고생을 시키지 않고 가정도 잘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일만에 미련없이 귀국의 길에 올랐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였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시야를 넓힌 최매화는 한국고찰을 한 셈 치고 또 다시 자주창업에 전념하였습니다. 안해의 이같은 소행에 감동된 나머지 남편은 자기 무역회사 돈 4만원을 내 다방 근처에 《매향장국집》 하나를 더 차려주었습니다. 두 영업집은 몇발작 사이의 거리를 두고 있다보니 관리하기도 편리하였고 손님들도 상호 보완으로 두 음식점을 잘 리용할 수 있어 경기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덜컹 둘째아들애가 임신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창업에서 모두 손을 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로지 음식맛에 승부를 걸고 최상의 봉사로 많은 고객을 고심히 확보한 음식업을 갑자기 그만두고 모든 정력을 둘째아들애에게만 쏟아부어 온 최매화였지만 창업에 대한 포부는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들애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올해 또다시 《도시음악다방》을 새로 넘겨받고 본격적으로 그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성실과 근면 그리고 따뜻한 배려심을 바탕으로 열심히 자기만의 방법과 요령을 개발하며 자립, 자강의 길을 힘차게 개척해 온 최매화는 《안도현 청곡특산물전업합작사》를 운영하며 개인창업에서 줄곧 성공가도를 달려온 남편에게만 의지하려 하지 않고 또 먼 곳의 노다지에 눈독을 들이거나 련련하지 않고 오직 자기 운명은 자기의 힘과 지혜로 개척한다는 도전정신과 넘어진 자리에서 완강히 다시 일어나려는 오또기정신으로 인생을 참되고도 뜻있게 가꾸어 왔으며 보람차고 가치있는 인생을 아름답게 엮어 왔습니다.



둘째아들애가 2살 되던 해인 2014년부터 행운스럽게 공익성 일터가 차례져 재무사업을 하는 한편 재차 자주창업에 도전장을 내건 최매화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디여 자립, 자강에 성공한 긍지와 자부심 가득히 더욱 아름다운 래일의 설계도를 힘차게 그려가고 있습니다.

불행도 생활의 강자 앞에서는 한낱 행운의 전환점일 뿐입니다. 행운을 따지고 보면 역시 우연인 것이 아니라 준비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몫이며 고심한 노력과 꾸준한 추구의 값높은 대가입니다.

운명은 다만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연변방송 리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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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리승호 기자]
태그: 습니  으로  최매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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