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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없는 고향정

2018년06월28일 08:28
조회수:97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디든 다녀올 수 있고 떠나갈 수 있는 열린 세상입니다. 《정이 들면 고향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고향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고 태를 묻은 둘도 없는 어머니땅이고 고마운 어머니품입니다. 어머니고향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한생을 고스란히 고향땅에 바쳐가는 애틋한 효심과 효행은 더없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덕성이고 덕행입니다. 

화룡시 동성진 해란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 박영애는 나서 자란 고향땅에 뿌리 내리고 한생을 아낌없이 고향건설에 이바지하여 《2018년 연변주 로력모범》의 빛나는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화룡시 동성진 해란촌 태생인 박영애는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재가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9살부터 남동생과 함께 본마을에 있는 할머니집에서 막내삼촌과 함께 자랐습니다. 막내삼촌이 장가 들어 가정을 이룬후 삼촌집에 얹혀 사는 신세로 돼버린 박영애는 조카들이 생겨나면서부터 눈치생활을 하게 되였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친구들이나 마을의 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모름지기 많이 받게 된 박영애는 고아나 다름없었지만 비관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남에게 뒤지려 하지 않고 언제나 진취적이고 바른 삶의 자세로 긍정적 에너지를 축적하기에 힘썼습니다. 1975년에 동성제1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츰 당의 기본로선교육공작대에 편입된 박영애는 동성진 광명촌에 이어 흥성촌에 파견되여 활기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을 따라 적극 학습한 보람으로 교육공작대 사업일선에서 197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박영애는 파견임무를 완수하고 바로 해란촌에 귀환하여 공청단서기 직무를 맡게 되였고 선후하여 부녀주임, 선전위원, 조직위원, 치보주임 등 다양한 직무를 겸해 맡기도 하였습니다. 

일찌기 1978년에 시조직부에서는 사업일군으로 등용하려고 그와 개별담화를 가졌고 도시취직, 대학추천 등 좋은 기회도 여러 번 차례졌었지만 박영애는 오로지 정든 고향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저없이 일일이 다 사절하거나 또 남에게 양보하고 계속 고향마을건설에 힘과 마을을 다하였습니다.

1980년, 23살에 일터에서 정이 든 재간 많고 마음씨 후더운 총각과 결혼한 박영애는 귀여운 두 딸애의 어머니로 되였습니다. 민반교원으로 음악과 한어 학과를 가르치던 남편은 재능껏 치부해 보라는 당의 좋은 시책에 힘입어 교단을 떠나 밭농사를 열심히 하면서 농장도 운영하고 차부업도 하면서 안해의 사업을 적극 지지, 성원해 주었습니다. 

부모 없는 불행과 설음을 더는 다시 자녀들한테 물려줄 수 없다는 일념으로 박영애는 대도시나 외국로무를 단념하고 남편과 함께 치부에 전념하여 마을의 공동치부를 선두적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양돈도 하고 집체차대도 운영하였으며 전문합작사형식으로 집체농장을 무어 집체경제를 춰세우며 적극 과학영농을 보급하고 농촌신용합작사를 설립해 주변 농호들에 많은 편리를 도모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2013년부터 해란촌촌민위원회 당지부서기 겸 주임 전문직을 맡기까지 2006년부터 7년간 진정부 소재지마을인 보성촌 동풍사회구역의 당총지서기 겸 주임 그리고 동성진로인총회 회장으로 발탁되여 여러 직무를 동시에 떠메고 일인다역으로 드바삐 보낸 박영애는 언제 어디에서나 한 우수공산당원의 선진모범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기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62세인 오늘까지도 많은 믿음과 기대를 한몸에 지니고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계속 해란촌의 코기러기역할을 활기차게 하며 고향마을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모든 정열을 다하고 있는 박영애는 그동안 기초시설건설에서부터 당건설, 문화건설, 문명건설과 경제건설 그리고 빈곤부축과 빈곤해탈에서 많은 사업실적과 성과를 올렸습니다. 

당원대오건설과 당사업을 힘있게 추진하는 한편 다양한 문화활동과 민속활동, 문체활동을 활발히 조직하며 마을에 생기와 활력을 끊임없이 부여해 온 박영애는 마을의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정신면모를 일신시키는 면에서도 많은 성취와 보람을 이룩하였습니다.

팔포강 골안물이 큰비로 인해 홍수피해를 입게 되였을 때에도 마을의 당원간부들을 이끌고 적극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물피해를 최소화한 박영애는 영광스럽게 성당위, 성정부로부터 3등공을 기입받았습니다.

42년의 당원년한을 갖고 44년간 고향건설에 아낌없는 기여를 해온 박영애는 《우수당지부》, 《선진집체》, 《우수촌》등 많은 집단영예와 함께 주와 시, 진의 《우수공산당원》, 《우수당무사업일군》, 《우수당지부서기》, 《선진부녀주임》, 《우수조해주임》, 《우수촌간부》, 《민족단결진보 모범개인》 등 많은 부류의 개인영예를 수두룩이 받아안았습니다.

시장경제시대 박영애는 《화룡시 제1차 10대 녀걸》과 《연변주 10대 공동치부인솔자》의 영예를 비롯하여 《농촌치부장원》, 《두가지 학습, 두가지 비기기 10대 녀장원》, 《수리녀장원》, 《농촌 공동치부 선진개인》 등 높은 영예도 수차 받았습니다. 

2008년에 《연변주 기층녀성사업 특수공헌상》을 수여받은 박영애는 2018년에는 《연변주 로력모범》의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12살, 10살 되는 두 외손자의 할머니로 된 지금까지도 고향마을을 위하여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생 최대의 기쁨과 자부심으로 간주하고 있는 박영애는 후회없는 보람찬 삶을 계속 힘차게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생활은 년령적 한계가 있어 보통 유감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진정 애틋한 향토애와 고향정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한계와 년령 속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고향을 향한 효심과 감은의 마음은 사회생활의 변함없는 생명선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드팀없는 고향정과 그 실천적 효행은 지속적인 생명활력의 비결입니다.   

연변방송 리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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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리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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