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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을 겪는 하로하 9년일관제학교 조선족반

2018년07월04일 09:53
출처: 료녕신문   조회수:400

하로하 조선족교육의 어제와 오늘

“60여성상을 지나온 관전현 하로하지역 조선족교육은 사나운 비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영원할 것이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계속 발전하여 나갈 것이다.”

이 글은 2003년 집필된 《관전현조선족지》 하로하조선족문화교육 부분의 결속어다.

15년이 지난 지금 관전현 하로하지역의 조선족교육은 어떻게 되였을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전 기자는 하로하조선족향을 찾았다. 20세기70년대 하로하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았었다. 전 향 1만 1,000여명 인구중 조선족인구가 2,000여명이나 있었다. 《안동성 조선인 이민조사》에 따르면 1845년 조선평안북도 초산군의 80여호 조선농민이 압록강을 건너 관전 경내의 압록강 연안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1910년에 이르러 일제의 통치에 못이겨 더욱 많은 조선인이 압록강을 건너 하로하향의 마가자촌, 통강촌, 천구촌, 양광촌, 전광촌, 쌍합촌, 진강촌, 석두자촌, 만보촌, 록강촌, 혼강촌, 동강촌, 압강촌, 대청촌에 발을 붙였다.

《안동지방지》에 의하면 1920년 관전현 하로하 일대에 조선항일독립군이 일본침략자와 용감하게 싸우면서 조선농민들에게 항일사상을 선전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 교육을 진행하였다. 당시 항일독립군 령도자인 리장청은 야학교를 꾸려 조선농민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치고 항일교육을 진행하였다. 그것이 바로 하로하 조선족교육의 시작이였다. 독립군의 영향을 받아 1925년 하로하향 마가자촌 뒤거리 원 농기구수리공장 자리에 조선족 유지인사가 꾸리는 첫 서당이 세워졌는데 첫기 학생수는 30여명이였다.

1931년 마가자촌에 국민학교가 건립되였으며 항일전쟁승리후 1946년 봄 ‘하로하국민학교’를 ‘하로하조선인학교’로 개칭하였다. 1947년 12월, 하로하 조선군중들의 요구에 따라 인민정부는 안동성민족련맹 주임 김성란, 부주임 박은파, 선전부 부장 김협 등을 하로하에 파견하여 마가자촌에서 관전현조선농민대표대회를 열고 ‘관전현 조선 민반중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학교 이름을 홍광중학교라고 명명하였다. 김협이 초대교장을 맡고 몇달 간의 주비단계를 거쳐 1948년 3월 6일 정식 개학하였다. 홍광중학교의 첫기 학생수는 45명이였다. 홍광중학교는 1949년 4월 6일 현성으로 옮기고 그해 10월 국영중학교로 승격되였다. 홍광중학교는 바로 현재 관전현조선족중학교의 전신이다.

1958년 민족교육의 발전에 따라 하로하 마가자촌에 관전현하로하조선족중학교가 설립됐다. 설립 당시 교원은 24명, 학생은 138명이였다. 1979년에 하로하조선족소학교와 조선족중학교는 합병되여 9년일관제학교로 되였다. 그때 소학부는 학전반부터 6학년까지 7개반, 중학부 5개반이였다. 학생은 모두 200여명이고 교원은 40명이였다.

이외에도 하로하향의 조선족집거마을인 통강촌도 유구한 민족교육력사를 갖고 있다. 1942년 독립군 성원인 조선생이 통강촌에서 서당을 꾸리고 조선글을 가르쳤다. 1946년 6월 1일 조선군중들이 자체로 경비를 장만하여 7칸의 교실을 짓고 통강촌조선소학교를 건립하였다. 통강소학교는 학생래원 고갈로 2010년 7월 하로하향중심소학교에 합병되였다.

40년대 후반기와 50년대, 하로하의 조선족 거주지역마다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였다. 선후로 천구조선족소학교(1946년), 진강조선족소학교(1951년), 석두자조선족소학교(1952년), 만보조선족소학교(1953년), 록강조선족소학교(1954년), 혼강조선족소학교(1955년), 동강조선족소학(1953년), 압강조선족소학교(1956년), 대청조선족소학교(1958년), 쌍합조선족소학교(1960년)가 설립되였다가 90년대 후반부터 학생래원 격감으로 선후로 하로하조선족학교에 합병되였다. 각 조선족촌들에 조선족학교 설립은 민족의 자질을 제고하고 민족의 전면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 작용을 하였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로하조선족학교는 현 직속학교로 승격되여 관전현제2조선족중학으로 개칭되였고 전승기를 맞아 학생수가 많을 때는 350여명에 달했다. 당시 관전현, 환인현, 심양 뿐만 아니라 길림성 집안현의 적지 않은 학생들까지 하로하조선족중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70여년간 하로하 조선족중학교와 조선족소학교는 도합 900여명 학생들이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 대학입학시험제도가 회복된 1978부터 2003년까지 하로하향의 조선족가구 260여호, 인구 1,006명 중에서 상급학교에 진학한 학생을 보면 중등학교16명, 전과학교46명, 대학본과 48명이다. 그중 변선화(남개대학), 김영철(중국정법대학), 오광옥(북경대학), 김광휘(락양해방군외국어대학) 등이 중점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인 단동시조선족중학교 교장 윤청,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인 단동시제1병원 부원장 김경철 등을 비롯하여 많은 우수 졸업생들이 각자 령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근년래 대도시 진출, 한국 로무송출, 그리고 산아제한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조선족 인구가 급격히 감소되면서 2003년 관전현제2조선족중학교는 중학부를 관전현조선족중학교에 합병시켰다. 소학부는 하로하한족학교에 합병되여 지금은 하로하9년일관제학교 조선족반으로 불리우고 있다. 합병 당시 소학부의 조선족교원은 34명이였고 학생수는 70여명이였다.

“관전현조선족제2중학교의 철거와 조선족소학교와 한족학교의 합병은 하로하지역 조선족인구의 류실 특히 조선족학교 학생의 류실을 가속하였다”고 유관인사는 피력하였다. 하로하향 조선족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이 관전현성이나 단동, 심양 등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조선족소학교가 독립성을 잃고 한족학교의 부속 조선족반이 되여 규모가 작아지자 조선족학생들 마저 학교의 교육질량에 대해 의심하면서 조선족학교의 입학을 꺼렸던 것이다.

2014년부터 조선족반은 2년 혹은 3년에 한번씩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지금 하로하학교 조선족반에는 교원 9명에 6학년생 4명, 3학년생 4명, 1학년생 4명이 있다. 12명 조선족반 학생중 4명이 조선족학생이고 8명이 한족학생이다. 한족학생들이 조선족반을 다니고 있는 반면 하로하의 10여명 조선족학생들은 한족반을 다니고 있다. 원래 유치원부에도 조선족반 학생 3명이 있었는데 금년 모두 한족반으로 ‘집단탈출’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족반은 학생수가 적고 규모가 작아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원인이였다.

취재후 기자는 기념촬영을 위해 12명 학생을 운동장에 모이게 했는데 12명 학생중 누구 하나도 조선말을 하지 않았다. “학생동무들, 왜 조선말을 하지 않습니까?”란 물음에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자가 한어로 “동무들은 조선말을 하지 않습니까?(同学们不说朝鲜语吗)”라고 묻자 학생들은 “말하지 않습니다(不说)”라고 한어로 대답하였다. “집에서 조선말을 안합니까?(在家里不说朝鲜语吗)”라고 묻자 학생들은 “말하지 않습니다(不说)”라고 한어로 대답하였다.

조선민족은 자고이래로 문화교육사업을 매우 중시하며 가정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소팔아 자식 공부를 시킨다”는 미풍량속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지난날 휘황찬란한 교육성과를 자랑했던 많은 조선족학교들이 페교의 아픔을 면치 못하였다. 우리 성 마지막 향급 조선족교육부문인 하로하조선족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조선족인구 류동에 따른 지역 학생래원의 고갈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좌우지할 수 없는 가슴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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