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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은희”, 세월의 강 건너 추억을 노래하다

2018년08월31일 09:37
출처: 길림신문   조회수:1278

가수 김은희씨

“가수 김은희”라고 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 세기 80년대초 추억의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그녀가 결코 생소하지 않다.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수양버들>, <사랑의 푸른 하늘> 등 정서적이면서도 애틋한 상념에 젖어들게 하는 특유의 목소리와 감성으로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던 가수, 그녀는 노래 잘하는 가수이면서 또 아름다운 미모와 선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안았던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지난 세기 80년대의 한 시기를 풍미하던 인기가수 김은희씨였지만 그 후로는 오래동안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최근 가족방문차 연변을 찾은 김은희씨를 만나 그녀가 건너온 추억의 강들을 더듬어 보았다.

8월 28일 오전 11시, 연길공원 앞에서 김은희씨와 <그대들은 생각보았는가>의 작사자이며 원 길림신문사 문예부 편집이였던 리선근선생이 참으로 오랜만에 해후상봉을 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리선근선생과 김은희씨는 80년대 당시 인기가요였던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의 노래로 인연이 깊은 듯했다. 김은희씨가 가장 먼저 불러서 히트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기 때문이다.

반갑게 만나 회포를 나누는 김은희씨와 리선근(오른쪽)선생

리선근선생에 따르면 1979년도 당시 연변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리선생은 전 주적으로 7명의 작가,시인들을 뽑아 진행했던 연변주민정국의 항일렬사자료 수집 사업에 참가했다. 당시 리선생은 항일렬사인 최희숙렬사의 사적을 취재 발굴하고 방송극을 창작했는데 방송극의 머리시가 바로 후일 인기곡이 된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가사였다. 머리시의 내용이 좋아서 작곡가 방룡철선생이 곡을 붙인 후 노래가 나오게 되였는데 노래를 부를 적임자를 선택하는 데도 이야기가 있었다.

리선근선생은 당시 연변가무단의 22살 밖에 안되는 햇내기 가수 김은희씨가 이 노래를 부르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아직은 무명의 신인 가수이긴 하지만 기성 가수들처럼 틀에 박힌 목소리와 감정으로 노래를 부를 것 같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아직 때묻지 않고 순수한 목소리의 햇내기 가수가 노래의 주제와 감정, 그리고 분위기까지 잘 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은희씨는 당시를 회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노래는 가사에도 나오다 싶이 ‘이름없이 심산속에 누워있는 무명의 렬사’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추모의 감정을 담아 불렀던 것 같아요”

2절까지 2분이 좀 넘는 이 노래를 록음하는 데는 온 오후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좀더 훌륭한 노래를 만들기 위한 작사자, 작곡가는 물론 가수의 집요한 집착과 노력이 바로 불후의 명곡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래를 만족스럽게 록음하고 나서 리선근, 방룡철, 김은희 등 여러명이 함께 연길 렬군속국수집에 가서 축하의 “랭면파티”를 가졌다고 리선근선생은 30여년전의 일을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심혈을 기울인 이 노래가 전파를 타고 나서 곧 인기가곡이 됐다. 김은희씨도 일약 인기가수로 주목받으면서 륙속 <수양버들>, <사랑의 푸른 하늘>, <세월은 흘러도>, <까만 눈동자> 등 허다한 인기가요들을 청중들에게 선물했다.

“그 때는 노래를 참으로 순수하고 령혼이 담긴 마음으로 불렀던 것 같아요.”세월이 이젠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김은희씨는 자신이 불렀던 노래의 순수한 이미지와 진심어린 령혼을 담은 감정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향 연변에 오니 하늘이 한점 오염 없이 파랗고 공기도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모르겠다”고 김은희씨는 말했다. 몸은 비록 타향에 살지만 나서 자란 고향땅에 대한 향수는 짙은 그리움으로 남아있다고 그녀는 추억했다.

연변가무단에 오기 전 그녀는 룡정고중의 학생이였다.

고향이 룡정시 개산툰진인 김은희씨는 고중시절에만 해도 노래가 아닌 무용으로 청운의 꿈을 부풀리는 무용지망생이였다. 그런데 학교의 음악선생님이 “은희는 무용보다는 노래를 했으면 더 좋겠다”는 권고 한마디에 노래로 전향했다. 그즈음 전 주 중학교 문예경연대회가 있었는데 김은희씨는 <피였네>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러 대뜸 주목받았다고 한다.

그 때가 18살이였고 그 노래는 급기야 연변방송국의 매주일가에까지 오르면서 김은희씨는 싹수가 보이는 가수로 주목받게 되였다. 연변예술학교에서 입학시험을 보라는 권유도 들어왔고 연변가무단에서는 가무단 학원반에 그녀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룡정고중에서 연변가무단 학원반에 들어왔고 가무단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된 성악공부를 시작했다.

그 때는 가무단에서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공연도 많이 했지만 방송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당시로서는 음악, 특히는 인기가요들이 제한된 공간의 무대공연보다는 라지오를 통한 방송전파를 타는 것이 더 널리, 더 빠르게 전달되고 류행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방송전파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인기가요와 인기가수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시기였다. 물오른 자기 특유의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김은희씨의 노래들은 방송전파를 타면서 대부분이 인기가요가 됐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때는 자기 노래가 인기가요가 되고 또 자신이 인기가수인 줄을 느끼지 못했다고 김은희씨는 털어놓았다. 가무단을 떠나고 또 고향을 떠나고 난 후에야 많은 사람들이 자기 노래를 좋아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고 말했다. 가수로서의 인기가 오를 즈음인 1983년도에 그녀는 연변가무단에서 대련가무단으로 전근했고 1987년도에 향항인과 결혼, 1993년부터 향항에 정착해 가정주부로 살아가면서 음악무대를 떠나다 보니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되였다.

장독대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껴보는 김은희씨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언어도 안 통하고 친척친우 하나 없는 향항 생활에서 그녀는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누군들 한평생 순탄하고 아름다운 꽃길만 걸어갈 것인가? 결국 인생의 어려움이나 힘든 과정은 누구나 례외없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였다.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인내하고 견디여내는 지혜와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어려웠던 과거라고 해도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지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돌아보는 추억의 시간들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던 김은희씨가 올해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에 등장해 고향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김은희씨의 <수양버들>을 한 가수가 부르고 있었는데 1절이 끝나고 새로운 소절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낯익은 김은희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 뜻밖에도 오래동안 무대를 떠났던 김은희씨가 나타나면서 시청자들을 깜짝 놀래웠다…

80년대 초반, <수양버들> 을 부를 때의 20대 애된 모습의 처녀가 50대 후반의 성숙된 녀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순수한 진정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노래소리와 몸가짐은 변함이 없었다. 바로 김은희씨가 그 날 불렀던 김성휘 작사 허원식 작곡의 <수양버들> 그 대목 노래말이 운명처럼 추억의 영상으로 클로즈업된다.

고달프던 옛날은 없었던듯이

새 아침을 즐기는 마음의 동무

고향의 자랑을 한몸에 안고

밤낮으로 춤추는 랑만의 수양버들, 수양버들…

그녀는 지금도 세월의 강 건너 고향을 추억하고 애정을 다해 고향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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