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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해협의 력사 도시 믈라카

2018년09월20일 16:52
출처: 연변일보   조회수:71

믈라카 해협의 력사 도시인 믈라카는 500년 이상 동안 믈라카 해협에서 동서 교역과 문화 교류를 하며 발전하였다. 믈라카의 력사는 초기 단계가 15세기에 믈라카 왕국으로 시작하여, 16세기 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통치 기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믈라카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과 문화 도시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믈라카시내에 들어서니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감이 들었다. 마치 아랍과 중동의 이슬람국가로 오지 않았냐 하는 환각이 들었다. 뾰족뾰족한 지붕, 흰벽체, 복숭아식 창턱이 유난히 시선을 끌며 숭엄해 보였다. 다분히 문화와 이색적 종교색채를 풍기고 있었다.

믈라카의 스타더이스(Stadthuys), 눈에 띄는 붉은 색의 시청, 극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네델란드 건축이기도 하다.

믈라카시는 말레시아의 고도였다. 근대에 와서 수도를 꾸알라룸뿌르로 옮겼지만 꾸알라룸뿌르에는 금융기구만 남겨두고 행정기관들은 륙속 다시 믈라카로 옮겨졌다. 믈라카에는 유명한 고적과 문물들이 많은 곳으로서 력사와 문화가 어울리면서 형성된 볼거리가 많았다.

시내를 돌아보면 이슬람교회당과 력사유적지, 문물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강택민주석과 리붕총리가 다녀갔다는 삼보절과 삼보 우물을 볼수 있고 또 화인들이 자체로 자금을 모아 부지를 사서 만든 공동묘지를 볼수있다. 공동묘지에는 작은 비석을 세우고 세면트로 만든 1만2000여개의 작은 무덤이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침략군에게 학살당한 화인들이 대부분이라 한다.

믈라카시에는 말레인 집거구와 화인집거구, 인도인 집거구들이 있으며  화란, 뽀르뚜갈, 영국인들이 살던 집거구와 고택들이 있다. 화인집거구에서 간판을 보면 간판 에 한문은 크게 씌여있고 영문은 작은 글자로 쓰여있었다. 하지만 다른곳은 영어를 크게 쓰고 한문을 작은 글로 씌여있었다. 과거 외국인들이 거주하였던 집들은 지금 대부분 박물관이나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믈라카시에는 고층건물이 별로 없었다. 보편적으로 3-4층이다. 집은 높지 않지만 화려하게 지었다. 이곳은 바다물에 침적된 땅이여서 지질기반이 약하여 높은 층집을 지을수 없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려행 시 주의점도 두가지 알려드리고 싶다.

말레아시아에서는 이런 말이 돌고있었다. “깡패는 경찰을 무서워하고 경찰은 부자를 무서워하고 부자는 깡패를 무서워한다.” 이 말은 여실히 말레아시아의 사회현상을 표현한 말이였다. 싱가포르를 떠날 때 가이드가 말하였다. 말레아시아에 가면 가방을 조심하라고 했다. 가방을 꼭 앞에 놓고 다니라 했다. 가방을 뒤에 메는 것은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라 했다. 말레아시아는 싱가포르보다 날치기 도적이 있어 안전하지 못하다고 했다.

려행을 떠날 때 말레이시아 관광 관련 자료에는 끌신을 휴대하라고 쓰여있었다. 왜서일가? 하면서도 떠날 때에는 끌신을 준비하고 떠났다. 광주 호텔에 주숙하고보니 끌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다른 곳에도 광주처럼 호텔에 끌신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짐이 된다고 내버렸는데 정작 싱가포르와 말레아시아에 와보니 호텔들에는 끌신이 없었다. 어떤 호텔에는 비누도 없었다. 대신 샤워설비는 있었다. 호텔안에서 맨발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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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수진]
태그: 500  Stadthuys  16  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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