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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으로 불타던 홍색세월 되새기며

화룡 혁명근거지 탐방

2018년09월29일 09:22
출처: 연변일보   조회수:65

화룡시는 38년간의 반일투쟁 력사를 갖고 있는 로혁명구로서 수많은 혁명선렬들의 자취가 이곳에 남아있다.

투도진정부 광장에는 시세영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화룡시정협 부주석 범경학의 소개에 따르면 시세영은 ‘9.18’사변 후 1931년부터 1944년까지 항전을 견지해온 많지 않은 항일련군급 간부이며 연변지역의 첫 항전 총성을 울린 항일련군 명장이기도 하다. 다섯살 때 시세영은 부모를 따라 화룡현 륙도구로 이사왔다. 1931년 12월 28일, 경찰로 근무하던 시세영은 13명의 경찰과 안해, 자식들을 거느리고 서성진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이때로부터 그는 장장 14년 동안 일제에 항전하며 혁혁한 공로를 세워 동북3성에서 이름을 떨치고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런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 서명으로 발급한 렬사증을 받은  유일한 항일민족영웅으로 되였다.

약수동항일근거지에는 화룡시 혁명투쟁의 요람이며 많은 휘황찬란한 력사가 스며있다. 지난 세기 20년대 중기에 연변의 혁명의 불꽃은 이곳에서 피여올랐다. 1930년 5월 26일, 동북지역의 첫 인민정권(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권)이 이곳에서 설립되였던 것이다. 이날 약수동 대중들은 신춘 동지의 지휘 아래 큰 집회를 가지고 폭동지휘부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으며 5월 30일에 대규모 폭동을 발동했다. 5월 30일 밤, 약수동적위대를 골간으로 하는 몇십명의 기습대원이 총 18자루, 권총 1자루를 지니고 투도구에 잠입했다. 기습대원들과 100여명의 농민폭동대원들은 적 진영의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투도구 일본령사분관을 습격함과 아울러 반동적인 ‘조선인민회’ 회사건물을 불살라버린 후 재빠르게 철수했다. 약수동쏘베트정권이 설립된 후의 첫번째 혁명행동이 있은 후 100세대 미만의 마을에서 김순희를 비롯한 70여명의 항일렬사들이 용솟음쳐나왔다.

당시 동만특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었던 처창즈항일유적근거지를 소개할 때 범경학은 감동을 금치 못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이 근거지는 1935년 1월에 정식으로 설립되여 비록 10개월밖에 존속하지 못했지만 기세등등하게 날뛰던 일본군과 위만군의 기세를 꺾고 항일무장력량의 위엄을 장대시켰으며 항일유격전을 견지하는 등 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했다. 1934년 3월 중공동만특위는 화룡현 유격대대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 2퇀으로 재편했다. 그해 4월, 2퇀은 안도현 경내에서 항전을 견지하였으며 그 후 중공동만특위 및 연길현, 안도현의 반일군민대오와 회합하여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를 건립했다. 초기에 적들이 빈번하게 진공해왔지만 근거지의 군민들은 단결하여 용맹히 싸우면서 견결히 반격을 가하여 300여명에 달하는 적들의 포위공격을 물리치고 40여명을 사살했다. 그 후 처창즈근거지의 독립사 1, 2퇀은 도로를 파괴하고 적들의 통신을 차단시켰으며 일본군을 저지하고 위만군을 기습하는 전술로 적들이 쉽사리 근거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 두갈래로 나누어 출격하여 넓은 지역에서 령활하게 반봉쇄, 반토벌 유격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근거지의 역할이 날따라 확대됨에 따라 초조해진 일본침략자들은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처창즈혁명근거지를 겹겹이 포위하고 비행기로 폭격하면서 삼엄한 경제적 봉쇄를 실시했다. 실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 군은 근거지를 옮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가렬처절한 투쟁사에서 13용사 사적도 화룡시인민들에게 오래동안 기억되고 있다. 1933년 투도구, 이도구 등지에 집결해있던 360여명의 일본군과 위만군은 어랑촌 항일근거지를 대거 토벌했다. 화룡유격중대 13명 용사들은 300여명의 적들과 근 6시간에 달하는 혈투를 벌렸다. 그들은 자신의 피어린 생명으로 1000명 대중과 간부들이 안전하게 전이할 수 있게 엄호했다. 그 전투가 있은 후부터 적들과의 격전에서 장렬히 희생된 화룡유격중대의 9명 유격대원과 전투에 참가한 기타 4명 유격대원을 13용사라고 불렀으며 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화룡시인민정부는 서성진 와룡촌에 ‘13용사기념비’를 세웠다.

주당위 당사연구실 자료모집연구처 처장 한순란은 “13용사는 일본침략자와 끝까지 싸우는 장거로 중화민족이 외부의 침입에 항거하여 나라와 인민을 구하는 장렬한 한페지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광범한 인민대중들을 감화시키고 항일투쟁의 필승의 신념을 다져주었다.”며 “우리는 맡은바 직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고 선렬들의 피로 씌여진 력사와 정신을 하나의 덕목으로 삼아 전승하고 자신이 갖춰야 할 수양으로 삼아 이어나가며 드팀없이 지켜야 할 생활준칙으로 삼아 초심을 잊지 말고 력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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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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