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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 연변적 지원군 렬사 진증길, 정동춘 가족을 찾았답니다!

2019년04월02일 15:4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1411

4월 1일 기자는 주퇴역군인사무국, 연변군분구 관련일군과 함께 진증길, 정동춘렬사의 가족을 찾기에 나섰다. 곧이어 두 렬사의 가족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동춘렬사의 제수 오채봉씨)

당일 기자는 선후로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주퇴역군인사무국을 찾았다.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사업일군의 조사를 통해 항미원조시기 룡정 명단에서 정동춘과 동명인 렬사를 찾아냈다. 진일보 자료비교를 통해 이 렬사의 출생지, 출생시간과 희생시간이 국가퇴역군인사무국에서 제공한 자료와 완전히 일치한 것을 발견했는 바 정동춘이 1949년 2월에 참군했고 거주지는 룡정시 백금향으로 나타났다.

(사업일군과 정동춘렬사의 조카가 정씨네 가족족보를 보고있다.)

오전 9시경 연변군분구 정치사업처 주임 장현봉은 당일 아침 연변군분구 정치사업처에서 이미 전 주 무장부문과 련합으로 렬사가족 찾기에 나섰다고 기자한테 련락이 왔다.

얼마후 룡정시 무장부 정치위원 장경충은 이미 기층무장부대를 통해 정동춘렬사 가족의 호적소재재를 찾았으니 오후에 집으로 가 확인할 것이라 밝혔다.

(진증길렬사의 제수 김춘금씨)

연길시퇴역군인사무국에서 연길시 렬사 명단을 찾아보았지만 진증길 렬사와 관련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분석을 통해 새중국 성립초기, 우리 주 구역 획분이 지금과 달랐고 전에 연길현은 룡정, 도문 등 지에 포함되였던 점을 감안해 기타 현시일 것으로 판정했다. 연길시퇴역군인사무국에서는 관련 현시 해당 부문을 찾아 자료를 찾아줄 것을 희망했다.

반시간 후, 도문시 퇴역군인사무국 사업일군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알고보니 진증길은 도문시 장안진 사람이였다. 관련부문에서는 진증길이 1955년 12월 30일에 혁명렬사로 비준된 등기표와 1982년 3월 혁명렬사 조사등기표를 보내왔다.

당일 오후 장현봉의 련락과 협조하에 기자는 두 길로 나누어 도문시당위 상무위원이며 인민무장부 부장인 백아동, 룡정시 인민무장부 정치위원 장경충과 각각 련락을 취하고 함께 두명 렬사의 가족을 찾아나섰다.

렬사 진증길: 두명의 남동생 아직 건재해

4월 1일 주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이며 도문시 당위서기인 윤성룡, 도문시 당위 부서기이며 시장인 조영호는 “영웅을 도와 가족을 찾아드린다”는 행동을 접한 후 즉히 인민무장부, 퇴역군인사무국 등 부문 책임자들과 전력으로 진증길 렬사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

도문시당위 상무위원이며 인민무장부 부장인 백아동은 민정국을 통해 진증길렬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났지만 1955년 장안진으로부터 월청진 마패촌 8조로 이사간 사실을 알게 되였다.

당일 오후 2시경, 백아동은 관련 책임자와 함께 도문시 정무봉사중심 공안국 호적창구를 찾아 가족의 정보와 현주소를 찾아보았다. 조사가운데서 월청진 진장과 월청변경파출소 지도원으로부터 렬사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마패촌에서 진증길렬사의 둘째 남동생의 부인 김춘금 로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진증길렬사의 셋째 남동생 진호산, 넷째 남동생 진호길의 현재 거주지를 알 수 있었다. 진호산은 하남 정주에 거주하고 진호길은 연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신체가 불편해 소통이 어려웠다.

백아동은 진호산의 딸 진미선씨와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아주 감격스러워하며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찾을 것이라 했다.

렬사 정동춘: 편지 하나로 리별을 고하다

4월 1일 오후 룡정시 인민무방부 정치위원 장경충의 도움하에 기자는 백금향 백금촌을 찾아 정동춘 렬사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룡정시지원군렬사명단>>에 등록된 정동춘 렬사의 당안에 따르면 그는 룡정시 백금공사 립신대대에서 입대했고 어머니 이름은 김옥녀로 나타났다. 정동춘 호적정보에 따라 가족을 찾으려 했지만 1996년 화재가 발생하면서 백금향변경파출소 호적자료가 전부 타버려 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이 존재했다.

정동춘의 어머니 김옥녀씨가 1978년 한차례 무휼금을 타갔고 당시 평정촌 당지부서기인 오기수 로인이 재료에 적힌 싸인을 증명할 수 있다는 단서만 가지고 관련 사업일군들은 수소문에 나섰다. 마을의 한 로인이 오기수씨의 녀동생 오채봉씨를 알려주었고 오채봉씨부터 정동춘 렬사가 자신의 큰아주버님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알게 되였다.

소개에 따르면 정동춘은 집안의 큰 아들로 1949년에 참군했고 해남도 전역에도 참가했다.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남동생 한명, 녀동생 한명이 있었는데 현재 모두 세상을 뜬 것으로 나타났다. 오채봉씨는 얼마전 정동춘 렬사의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련부문을 찾아가려던 차였다고 했다.

“아주버님이 집에 보내온 편지에 따르면 부대에서 조선에 가 전쟁에 참가해야 하기에 자신을 찾지 말라고 했다. 그후 다시는 련락이 없었다. 가족들은 참전 실종인원에 따라 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오채봉씨는 그 이후로 정동춘은 가족과 련락이 닿지 않았다면서 1978년 민정부문으로부터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 가족 영예기념증”을 받았고 1983년 렬사칭호를 받았다면서 그제야 가족들은 정동춘이 전쟁에서 희생된 것을 알았다고 했다.

룡정시 관련부문에서는 목전 성, 주 부문과 협력해 렬사의 유해가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연변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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