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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증길 렬사의 위대한 가족사, 2대중 8명이 참군!

2019년04월07일 08:08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394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도합 589명의 재한 지원군 렬사들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왔다. 일전 국가퇴역군인사무국에서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24명 렬사자료를 공포했는데 그중에는 연변적 렬사 진증길, 정동춘도 있었다.

4월 1일 매체에서 진증길, 정동춘 렬사의 가족을 찾는다는 정보를 보도한 후 사회 각 계 관련부문에서는 렬사들의 가족 찾기에 적극 나섰다.

각 부문의 협력으로 진증길 렬사의 원적은 도문시 장안진이였고 그의 어머니가 후에 도문시 월청진 마패촌 8조로 주소를 변경한 사실을 알게 되였다.

마패촌에서 진증길렬사의 둘째 남동생네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벽에 걸어둔 흑백 사진이 한눈에 안겨왔다. 사진속에는 군복을 입고 손에 기관단총을 든 멋진 청년의 모습이였다.

진증길렬사의 둘째 남동생의 부인 김춘금은 70년전 전쟁시기를 회억했다.

1930년 5월 장안진 마패촌에서 출생한 진증길은 네명의 형제중 맏이였다.

“아주버님은 어릴 때부터 어진 품성에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을 양보해주었다. 잘생긴 얼굴에 촌에서도 보기드문 훌륭한 청년이였다. 당시 집에 아이들이 많고 가난했던 탓으로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부족했다. 1947년 당시 17살이던 진증길은 정부의 호소에 따라 주동적으로 참군했다.”

김춘금은 그후 두차례 집에 돌아온 진증길 렬사를 만났다.

자료에 따르면 진증길은 1950년에 부대를 따라 조선에 들어가 전쟁에 참가했고 그 해 7월 1일 반장이였던 진증길은 조선 강원도에서 적들과 싸우던 중 장렬히 희생되였는데 당시 나이는 20살 밖에 안되였다.

증서를 받은 후 진증길렬사의 어머니 의식 잃어

김춘금씨의 회억에 따르면 시아버지였던 진봉석은 식물중독으로 늘 신체가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 황봉금이 혼자서 4명의 아이를 키웠다. 맏이였던 진증길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했고 1949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갔다.

진증길이 조선에 가 전쟁에 참가한 후 어머니는 항상 큰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고 무사히 돌아오길 빌었다. 하지만 3년후 정전협정을 체결한 후에도 꿈에 그리던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후에 정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집에 혁명렬사증서를 보내오자 그제야 어머니는 큰 아들이 전쟁에서 희생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하였다.

“시어머니는 해마다 설을 쇨 때면 홀로 눈물을 훔치면서 아주버님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시어머니는 큰 아들이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했기에 항상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춘금씨는 시어머니가 해마다 설이면 조선족 전통음식을 준비하고 사탕을 사서 큰 아들을 추모했다고 했다.

“해마다 둘째 아들과 저를 마을 뒤산의 렬사기념비에 보내 아주버님을 위해 제를 지내게 하였다.”

유일한 사진이 어머니의 그리움을 달래주다

벽에 걸린 사진은 진증길이 유일하게 남긴 한장의 사진이다.

“사진은 1955년에 정부 사업일군이 가져온 것인데 렬사증과 함께 갖고 왔고 그때 촌에서 추도회를 열었다.”

집이 가난했기에 진증길은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 이는 부대에서 찍어준 소중한 기념사진이였다.

“아주버님이 돌아간 후 이 사진을 조심스럽게 잘 보호해왔다. 1958년 시어머니가 일가족을 데리고 장안진 마반촌에서 월청진 마패촌으로 올라오면서 둘째 아들네 집에서 살게 되였다.”

1997년 시어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 이 사진을 둘째네 부부한테 건네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맏이의 유해를 찾게 되면 둘째네 큰 아들이 이 일을 처사하도록 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돌아가면 연길에서 화장하도록 했는데 고향에서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씨네 형제 모두 입대하다

“당시 진씨네 4형제는 모두 주동적으로 참군했다. 아주버님이 항미원조에서 희생된 후 남편 진수산과 두 시동생은 모두 참군했다. 진수산의 참군 수속은 모두 밟았지만 향정부에서 형제 3명이 모두 참군했다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후대가 끊길 수 있다고 판단해 농사일에 종사할 수 있고 어머니를 돌볼 수 있도록 진수산의 참군을 비준하지 않았다. 진호산, 진호길 형제는 바라던대로 참군했고 영광스러운 해방군 전사가 되였다.”

20세기 80년대 진수산네 두 아들과 진호산네 두 아들, 그리고 한명의 딸이 선조들의 홍색유전자를 이어 받아 중국인민해방군의 일원으로 되였다. 이로써 진씨네 2대중 8명이 참군해 나라를 지켰다.

선렬들을 기리며 변강을 건설하고 국방을 공고히 하다

김춘금씨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진증길렬사의 셋째 동생 진호산, 넷째 동생 진호길의 관련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목전 진호산은 하남성 정주시에서 부단급 간부를, 진호실은 연길의 한 양로원에 있는데 병으로 인해 표달능력을 잃었다. 진호길의 두 딸은 각각 화룡, 연길에 거주하고 있었다.

관련부문 인원들이 진호산과 딸 진미선과 련락하자 진미선은 격동된 마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큰 아버지의 관련 사항에 대해 상의할 것이라 했다. 목전 도문시 퇴역군인사무국에서는 렬사가족인 진호산 딸의 관련 자료를 상급에 보고했다.

혁명전쟁시기, 수많은 렬사들이 새중국의 건립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보귀한 생명을 바쳤다.

일년에 한번인 청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도문시당위 상무위원이며 인민무장부 부장인 백아동은 이번 렬사가족 찾기 활동을 통해 렬사들의 영웅적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인민무장간부로서 이번 활동을 계기로 전 시 관련 단체와 기층 골간 민병들을 조직해 선렬들의 헌신정신과 애국정조를 전승하고 당원간부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명기하여 각자 일터에서 신근하게 사업해 변강을 건설하고 국방을 공고히 하는 데 힘을 이바지하도록 하련다고 했다.

출처: 연변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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