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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기억속의 연변] 연변 청년 9434명이 지원군에 입대하다

2019년10월06일 14:1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357

1950년, 전쟁의 불길이 두만강변까지 만연되고 미군 전투기가 여러 차례 우리 나라 변경 령공에 침입해 도문, 룡정시에 폭탄을 투하했는데 화룡현 용화구 부암동 및 숭선구 고성마을 등 지역을 폭격했고 우리의 변경소학교를 폭파했으며 중국 변경 지역 주민들을 폭사하고 밭갈이 소를 폭격해 죽였다. 미군의 만행은 중국 인민의 큰 분개를 자아냈다. 항미원조 운동이 연변에서 일어났다.

1950년 7월 20일, 전국 항미원조 총회 연변분회가 성립되였다. 연변인민들은 조선과 중국에 대한 미 제국주의 침략에 항의하며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10월 중순,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 전장에 나가 침략자를 반격하자 연변 인민들은 큰 고무를 받았다. 대학생, 중학생들은 너도나도 붓을 내려놓고 지원군에 입대해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12월 15일, 최초의 1400여명 연변 청년들이 전쟁터로 달려나갔는데 각 현 시에서 모두 성대한 환송회를 열었다.

안도현의 김수환 어머니는 아들 6명을 두었는데 선후로 아들 4명을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 내보냈다. 그녀는 이번에 다섯번째 아들을 조선전쟁에 내보내면서 아들에게 “우리는 더이상 망국노가 될 수 없구나, 네가 용감하게 침략자를 무찌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자 영광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를 전쟁터에 내보내고 동생이 형을 내보내고 약혼녀가 애인을 내보내면서 연변 인민들은 대의를 위해 가정의 사사로운 정을 희생했다.

3년간의 항미원조 전쟁에서 연변인민은 9434명의 우수한 청년들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 내보냈고 5740명의 우수 간부 군중을 종군 작업대에 보내여 통역, 간호사, 구조원과 자동차, 기차 운전수 등 중요한 역할을 맡게 했다. 또 10만명의 연변 로동자들이 다리보수, 도로공사, 굴 파기 등 공사로동에 참여하여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웠다. 그중 6981명의 연변의 아들딸들이 소중한 생명을 바쳤다.

이 한장의 사진은 감동적인 력사적 순간을 잘 보여준다. 연길 기차역에서 어머니가 군대 가는 아들을 바래다 주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세사람이 서로 껴안은 팔은 애틋함과 걱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그 강인한 눈빛은 또 격려와 당부를 담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모든 연변 인민의 감정과 행동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바 “동북조선인민신문”의 촬영기자 김진호가 촬영했다.

출처: 조간신문

편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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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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