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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연변의 기억] 벼재배전문가 최죽송, 인민대표로 선거되다

2019년10월14일 17:10
출처: 연변라지오TV 넷 연변뉴스APP   조회수:203

이 사진은 1954년 7월에 찍은 것으로 연길시 장백향 신풍촌 인민대표대회 선거현장이다. 사진속 왼쪽 사람이 바로 저명한 농민벼재배전문가인 최죽송이다. 자치주가 갓 창립되였을때 연변은 벼재배기술이 락후했는데 생산량이 매우 낮았다. 최죽송은 벼유지온상기술 등 북방실정에 맞는 벼재배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새 품종 육성 등 방법으로 벼 생산량을 끊임없이 높여 연변 나아가 우리 나라 북방 벼재배사업에 마멸할수 없는 큰 기여를 했다. 

1947년, 최죽송은 당의 호소에 적극 호응하여 로동력이 부족한 농가를 묶어 호조조를 설립하고 벼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신풍촌 벌판에는 사시장철 물이 고여있고 랭기가 많아 벼생산량이 매우 낮았다. 반복적인 연구를 거쳐 북방실정에 맞는 벼재배기술을 모색해냈는데 연길벌에서 제일 처음으로 벼유지온상기술을 도입해 처음으로 생산량을 높혔다. 또 그가 배육해낸 벼모는 다른 사람보다 반달이나 먼저 모내기를 할수 있었으며 1951년 그가 개발해낸 저온지역에 적합한 새 품종 "원자 1호"는 헥타르당 3000근으로 부터 1만근으로 제고시키는 높은 소출을 올렸다. 최죽송은 전성 특등로력모범으로 당선되였다. 최죽송은 이런 영예에 만족하지 않고 벼재배에 더욱 고심해 "원자1호"의 개량품종을 연구해내 벼생산량을 헥타르당 12000근으로부터  15000근으로 높였다. 당시 생산력조건이 박약한 농업환경에서 이같은 높은 소출은 그야말로 기적이였는데 심지어 남방 열대지구의 벼생산량을 초과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경험은 전국에서보급되였고 국가 농업부에서는 최죽송을 중국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특별초빙해 "중국벼재배" 편집사업에 참가하게끔 했다.

1954년 7월, 연길시에서는 기층인민대표 선거사업을 진행했다. 이번 선거는 1952년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성립된후 있는 처음으로 되는 대규모의 군중선거활동이였는데 여러민족 각계 군중의 참여열기는 아주 높았다. 촬영기자 황범송은 벼재배전문가 최죽송이 신풍촌의 대표립후보자라는 말을 듣고 최죽송이 꼭 선거될것이라고 짐작하고 신풍촌을 선거활동의 취재현장으로 삼았다. 아니나 다를가 군중의 투표선거를 통해 최죽송은 만장일치로 인대대표로 선거되였다. 당시 촌에서 함께 선거된 다른 한 대표는 최죽송의 조수로 최경칠이라고 불렀다. 선거결과가 발표되자 최죽송과 최경칠은 무대에 올라 군중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축하를 받았다. 황범송은 무대앞에서 이 소중한 순간을 사진기로 촬영했다.

출처: 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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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민연]
태그: 1954  15000  1951  1952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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