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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기억속의 연변] 1969년, 2000여명 상해지식청년 연변으로 하향!

2019년10월23일 08:49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317

1969년 3월 1일, 첫번째 2000여명에 달하는 상해시 초중, 고중 졸업생들이 두번에 나누어 연변으로 하향왔다. 훈춘현으로 오는 1000여명의 지식청년들이 전용렬차를 타고 상해팽포(上海彭浦)역에서 출발해 장춘에서 차를 갈아탄 후 연변에 도착했고 연길현으로 오는 1000여명 지식청년들은 공농병 14호와 공농병 4호 배를 타고 상해군공로 부두에서 출항해 대련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연변에 도착했다.

연변군중들은 상해지식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3월 1일, "연변일보" 제1면에 "열렬히 환영한다-상해지식청년"이라는 론평이 발표되였다. 3월 3일, 훈춘으로 오는 상해지식청년 전용렬차가 장춘역에 도착하자 길림성혁명위원회와 장춘시혁명위원회에서는 "상해지식청년들의 길림성 농촌 정착을 열렬히 환영하는 대회"를 열었다. 3월 6일 오전, 상해지식청년들이 훈춘에 도착하자 훈춘현에서 환영대회를 열었다. 연길현으로 오는 지식청년들은 전용배를 타고 대련 부두에 도착하여 대련 인민군중들과 연변 영접대표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사진은 상해지식청년들이 대련항 부두에서 군중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은 연길현혁명위원회 영접소조 성원이자 현 혁명위원회 선전보도조 조장 고몽령이 촬영한 것이다. 당시 부두 곳곳은 열렬한 환호성으로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군중들이 손을 흔들었는데 고몽령은 큰 장면을 찍기 위해 부두 로동자들의 사다리를 빌려서 사용했다. 사다리에 서니 시야는 탁 트였지만 찬바람이 쌩쌩 불어 그가 촬영을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올 때 온몸은 얼어서 마비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매우 흐뭇했다. 왜냐하면 갓 배에서 내린 지식청년들에게 커다란 솜신 한컬레씩 주었기에 그들은 춥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였다. 상해지식청년들을 맞이하면서 신발을 주자는 방법은 바로 그가 제안한 것이였다.

1972년 11월까지, 연변지역에는 총 17785명의 상해지식청년들이 왔다. 그들은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생산로동에 참여하고 드넓은 흑토지를 개간하면서 연변인민들과도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이들은 또한 연변의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 든든한 변경 경제발전과 문화번영을 위해 공헌했다.

반세기가 지난 후, 대다수 상해지식청년들은 연변 집체호로부터 각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은 그시절 청춘을 불태웠던 연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기회를 리용해 연변의 민족문화를 널리 홍보하면서 두번째 고향을 위한 투자유치 사업을 주선하는 데 힘을 다했다. 또 연변의 가난한 학생들을 적극 지원하고 연변이 재해를 입었을 때 재해지역에 적극 기부하는 등 두번째 고향 발전을 위해 자신의 온갖 힘을 모았다.

격정으로 불타던 그시절로부터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상해지식청년과 연변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한세대 지식청년과 연변의 각 민족 인민이 청춘과 땀으로 함께 쓴 아름다운 이야기는 력사에 길이남을 것이며 영원한 발자취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출처: 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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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1000  彭浦  17785  11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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