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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에 고아, 8살에 옥살이, 31살에 핵전공...조국의 “핵잠수함”에 평생을 바쳐

2021년05월28일 10:46
출처: 중국조선어방송넷   조회수:405

중국 미사일 핵잠수함이수중 운반로켓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는 원자탄 폭발 성공 후 중국이 심해에 구축한

두번째 핵방패이다!

그제야 많은 사람들이그를 알게 되였다. 

우리 나라의 저명한 원자력 전문가

중국 제1대 핵잠수함초대 총설계사

중국의 첫 원자력 장치의주요 설계자

팽사록

조국의 핵 사업을 위해 그는 수십년 동안 묵묵히 헌신하였고 49세 때 위의 4분의 3을 절제해 만년에는 코로 음식을 주입하면서 간신히 영양을 보장하였다. 2020년 1월 그는 생전 마지막으로 마주한 카메라 앞에서 씩씩하게 말했다. “조국이 필요로 한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지난 3월 22일 12시 36분 팽사록 원사는 96세를 일기로세상을 하직하였다. 최근 중앙선전부는 팽사록 원사에게 “시대의 모범” 칭호를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

팽사록 원사는 중국 핵잠수함의 초대 총설계사로서 중국 첫 핵잠수함이 탄생하는 전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첫 100만킬로와트급 원자력발전소-대아만 원자력발전소의 도입, 총설계, 전단계 사업을 책임졌고 진산 원자력발전소 2기 공사를 자주적으로 설계해 건설했다. 그는 평생동안 핵사업 발전을 위해 창조적인 공헌을 했다.

사업에서는 “강철 사나이”로 불리우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순둥이”였다.

팽사록은 로일대 무산계급 혁명가 팽배의 둘째 아들로서 1925년 광동성 산미시 해풍현에서 태여났다. 1928년에 팽사록의 어머니 채소평이 영용하게 희생되였고 1929년 아버지 팽배마저 상해에서 희생되였다. 그해 그는 겨우 4살이였다. 

팽배의 아들이라는 리유로 어린 팽사록은 국민당의 “화근을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돼 전국에서 현상금을 내건 수배자가 됐다.

8살 때 팽사록은 국민당 당국에 의해 투옥되였다.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러운 감방에서는 밥에 벌레가 오르고 몸에 이가 생겼다. 그 뿐만 아니라 적들은 그에게 신원을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8살 팽사록

△1991년 66세 팽사록은 어릴 때 자신이 갇혔던 석포대 유적지를 찾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고문을 당했는지 모른다며 울분을 토했다.

“캄캄한 밤에 어머니가 저를 업고 피난을 갔어요.” 이것이 팽사록 생애 최초의 기억이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찍은 유일한 이 사진은 그에게 있어 더없이 소중한 재산이였다. 

1950년, 25살 팽사록은 처음으로 아버지 팽배의 사진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묵묵히 사진 뒤면에 이렇게 적었다. “중국혁명의 영용한 전사! 영광스러운 공상당원! 바로 저의 아버지-팽배 동지!"

팽사록은 "저는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할 수 없다. 혁명가가 될 수는 없지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나는 반드시 원자력 분야에서 성적을 낼거야”라고 굳게 다짐했고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일에서는 침식을 잃고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며 책임을 다하는 “팽 대담'이지만 생활 속에서는 “장난꾸러기”였다. 비록 어린 시절을 파란만장하게 보냈지만 그는 줄곧 락관적인 성격을 소유하였다. 

가족들은 팽사록에게 많은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중에서도 “팽가문의 여섯째”라는 별명의 유래는 가족 구성원의 “지위 서렬”과 관련이 있다.

집에서는 언제나 부인이 최우선이므로 모두가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다음은 딸이 둘째인데, 그것은 딸이 엄마의 추종자이며 영원히 엄마를 지지하기 때문이였다. 그 다음은 외손녀가 제3위, 가사 도우미가 제4위, 사위가 제5위이고, 자신이 맨 꼴찌 6번째였다.

팽사록은 롱담조로 "저는 집에서 지위가 가장 낮습니다. 잠을 몇시에 자고 밥을 언제 먹고, 술 담배를 금지해야 하는 것마저 관리받아야 하니깐요.”라고 말했다. 

△ 팽사록 부부와 손녀, 외손녀

"중국의 가장 훌륭한 아빠"

젊은 시절 팽사록은 사업에 전념하다 보니 가족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매우적었다. 하지만 은퇴 후 가족과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팽사록이 95세 때 딸 팽결은 아버지를 위해 특별한 상을 발급하였다.  “중국의 가장 훌륭한 아빠”상이다. 당시 상장을 만들어준 가게 주인은 "이런 선물을 처음 만들어 본다"고 말했다.

딸 팽결은 늘 아버지와 웃음꽃을 피웠고 아버지에게 “가장 잘생긴 아빠”라는 상도 수여하였다.

만년에 병원생활을 하면서 딸은 늘 아빠를 보러 병원을 찾았고 때론 손님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손님들이 돌아갈 때마다 팽사록은 휠체어에 앉아 손님을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바래다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고 딸에게 "see you tomorrow"라며 장난스러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때론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이는 그와 딸 사이의 특유의 사랑표달 방식이였다. 

딸 팽결은 "아버지는 마치 영원히 다 읽을 수 없는 책 같아요. 매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죠. 저의 맘 속에 가장 좋은 아빠 모습입니다”라고 말한다. 

“황소 개척자”

팽사록의 집 주방 창가에는 중국 제1대 핵잠수함 연구제조 기념 원반, 원자력발전소 핵섬 모형,  황소 조각상 등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보물"이 놓여 있다. 그중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세번째 보물이다.  "많은 동료들이 그를 황소 같다고 했어요. 이는 그의 인생에 대한 가장 좋은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951년, 팽사록은 우수한 성적으로 쏘련 류학선발 명액을 갖게 되였고 까잔 화공학원 화공기계 학부에서 공부하였다. 1956년에 쏘련으로부터 우수화학공업 기계 공정사 증서를 수여받았다. 그가 졸업하고 귀국할 무렵 쏘련을 방문하고 있던 진갱 대장은 팽사록을 쏘련 주재 중국대사관으로 불러 "중앙에서 일부 류학생을 뽑아 원자력 분야를 학습시키로 했는데 당신은 직업을 바꿀 의향이 있소?"라고 물었다. 

팽사록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만약 조국이 필요로 한다면 저는 기꺼이 할겁니다."라고 흔쾌히 대답하였다. 

팽사록은 늘, 자신은 한평생 핵잠수함을 만들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이 두가지 일만 해왔다고 말한다. 

2021년 3월 30일 "영웅의 핵잠수함"이라는 노래 속에서 팽사록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다. 바다에 유해를 뿌리고 조국의 바다를 영원히 지키자.

[본 작품에 사용된 사진 등의 내용에 저작권이 관련되여 있으면 전화해 주세요. 확인 후 인차 삭제하겠습니다. 0433—815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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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金红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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