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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자로 사는것이 즐겁고 행복하우…”

2014년06월10일 07:52
출처: 연변일보   조회수:34

우리 신변의 훌륭한이들:

북산가두 단령사회구역 리성복씨

연길시 북산가두 단령사회구역에는 올해 70세에 나는 리성복씨가 있다.퇴직금도 없이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재해구와 약소군체돕기에 7만여원의 성금을 후원해온 그의 삶의 철학은 “마음의 부자,사랑의 부자”로 사는것이다.

“삶이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불행이 들이닥칠지 누구도 몰라요.”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냈던 그로서는 오늘의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 그는 1987년에 아들이 7살이 되던무렵에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당시 그의 아들은 두달동안이나 구급실에 있었는데 일반 병실에 옮겨진후에도 전신마비로 꼼짝달싹하지 못하였다.의사들도 그가 언제 일어설지 장담하지 못하였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는 집도 팔고 집안의 돈이 될만한 물건은 다 처분했다.그리고 없는 살림에 아이한테만은 맛있다는 음식은 다 해먹이고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사먹이였다.안마도 배워 직접 아들한테 안마를 해주면서 매일매일 수많은 땀동이와 지극정성으로 재활훈련을 시켜주었다.덕분에 그의 아들은 기적같이 다시 걸을수 있게 되였고 학교에도 다니게 되였다.

“당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세상행복을 다 찾은것 같았어요.”

그는 학교 가까이에 세집을 잡고 아들이 힘들어할가봐 아침저녁으로 업어가고 업어오면서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그런데 아들이 건강을 되찾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할 무렵에 건축일을 하던 남편이 또 2층에서 떨어지며 머리를 다치였다.대수술을 거쳐 위험에서 벗어나긴 하였지만 집안의 모든 중임을 리성복씨가 떠메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로부터 리성복씨는 궂은 일 마른 일을 가리지 않았는바 건축공사장에서 철근을 메여 나르는 험한 일까지 선뜻이 찾아하였다.하지만 당시 그의 가냘픈 혼자 힘으로는 삶을 춰세우기가 힘들었다.하여 석탄을 살 돈이 없어 옥수수대를 주어다 불을 때기도 하였고 쌀이 없어 만두를 사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지만 그는 종래로 국가에 손을 내밀지 않았으며 자기의 힘으로 두 자식을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워냈다.

“남편과 아들딸이 내 곁에 있다는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그는 아들딸이 다 성장하여 제노릇을 하자 또 사회구역과 로인협회, 새세대관심사업에 발벗고 나섰다.그는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한 강미향학생이 생활비때문에 속을 썩인다는 소리를 듣고 매달 200원씩 3600원의 생활비를 보내주었으며 하길려,백귀연 두 가정의 학생한테 400원,연변언어장애훈련학교에 다니는 김모학생한테 500원,연변1중 최모학생한테 1000원의 성금과 600여원어치의 새옷을 가져다주는 등 불우학생돕기에 앞장섰다.그리고 중풍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87세 고령의 최금옥할머니네 집에 찾아가 밥과 청소를 해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일들을 2년 남짓이 해왔다. 이밖에 의란진 양로원에 2마리의 새끼돼지와 과일, 옷가지들을 가져다주는 등 선행도 보이였다.

차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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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佚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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