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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을 함께 합니다》 2016년 9월 2일 방송정보

2016년09월01일 10:01
조회수: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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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일 금요일저녁 라지오생방송  《이 밤을 함께 합니다》에서는 강한 도전력과 경쟁력 그리고 뜨거운 심장과 착한 심성으로 남에게 많은 사랑과 배려를 베풀며 인격적매력을 쌓아온 성우수당무사업일군인 화룡시 문화가두 문성사회구역 최금옥 주임 겸 당총지서기를 모십니니다.
     많은 청취 바랍니다.

    뉴스종합방송 AM 1206
    문예생활방송 FM 94,9
    방송시간:
                   금요일 저녁 9시 5분

                                                                                                                              프로담당: 리승호

 

                                                성우수당무사업일군 최금옥
                                                                                                             리승호기자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남과 겨룰수 있는 사회경쟁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남들과 함께 도와가며 서로 사이좋게 잘 살수 있는 능력도 지녀야 합니다. 화룡시 문화가두 문성사회구역의 최금옥 주임 겸 당총지서기는 강한 도전력과 경쟁력을 지닌 실력이 뛰여난 지도일군일뿐만아니라 뜨거운 심장과 착한 심성으로 믿음과 신뢰를 주며 남한테 많이 베푸는 우수한 당원간부입니다.
       최금옥서기는 화룡시의 한 림업국가정에서 3남매중 둘째로 태여났습니다. 회계였던 아버지와 주민위원회 주임이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외동딸로 곱게 자라며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와 강한 생활력 그리고 고운 심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는 고중을 졸업하고 화룡시민족침직공장 로동자모집에 합격되여 19살에 국영기업 종업원으로 되였습니다. 후덥고 근면한 성품을 지닌 그는 사업에 참가하여 인츰 보관원으로 등용되였고 4살이상인 한직장의 멋진 총각과 사랑을 속삭이게 되였습니다. 1986년에 결혼하고 이듬해에 귀한 아들을 본 그가 1988년에 시복장공장 보관원으로 전근하여 8년간 사업하였을 무렵, 시장경제의 거센 충격으로 공장이 파산되면서 그만 직장을 잃게 되였습니다. 그시기 남편이 일하는 민족침직공장도 불경기에 처해 로임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이였습니다. 맏며느리로서 우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시누이와 시동생들과의 형제우애를 다지며 한창 자라는 아들애를 잘 키우려니 그들 부부는 어쩔수 없이 자주창업의 길에 나서게 되였습니다. 사촌오빠가 살고있는 영구에 가 한국기업을 상대로 시험삼아 개고기음식점을 1년쯤 경영하며 새로운 창업아이디어를 얻게 된 그들은 살던 고장에 다시 돌아와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여들었습니다. 1997년, 3천원을 투자하여 화룡시시교 길옆의 한 보통살림집을 사 살림을 하면서 “집체호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골맛이 물씬 풍기는 수수한 장식에 소박한 민속음식들로 식당을 운영하였지만 첫방에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지식청년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의 한순간을 보낼수 있는 분위기여서인지 사람들은 입소문을 타고 물밀듯이 찾아들었습니다. 식당은 매일매일 초만원을 이루며 그 어느 집보다도 음식장사가 잘되였으나 잘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찾아오면 술을 권하며 함께 마셔줘야 했던 남편의 건강이 점점 기울어져갔습니다. 간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남편은 일에 지치고 술에 찌들어 차츰 무너져갔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한창 잘나가는 식당문을 걷어닫고 영업을 중단하였지만 남편은 끝내 간암진단을 받고 13살난 아들을 안해한테 남겨둔채 2000년에 불행히 세상뜨고말았습니다. 37세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최금옥서기는 깊은 비애에 빠져 한동안은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들과 불쌍한 시부모님을 봐서라도 기어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주임사업을 잠시 맡아달라는 주민위원회 청탁을 받고 주민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뛰며 비통을 힘으로 바꾸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는 오래동안 주민위원회 주임사업을 했던 어머니처럼 열심히 제10주민위원회 림시주임직을 맡아하다가 2001년 4월, 사회구역개혁과 함께 주민들의 민주선거를 통하여 정식으로 문화가두 문성사회구역 주임으로 당선되였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사회구역 당총지서기직무를 겸해 맡아오게 되였습니다. 
       모든것은 다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였습니다. 사무실이나 활동장소도 없고 간부대오도 완벽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사회구역의 기본정황부터 상세히 료해하기 위하여 그는 두 부주임을 거느리고 신발이 닳도록 골목골목을 누비며 많이 묻고 깐깐히 수첩에 기록하고 열정적으로 자아소개를 하고 련계전화번호도 남기며 진종일 밖에서 떠돌아다녔습니다. 혹여 모여앉아 한담하는 로인들을 맞띠우면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깎듯이 인사하며 정감을 나누었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54개 행정소조의 빈곤호와 특수한 가정들을 일일이 체크하며 집집의 속사정까지 손금보듯 장악하여 민생기록부를 작성한 그는 나중에는 행정구역의 상세한 지도를 앉은자리에서 정확히 그려내여 “산지도”로 불리우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업을 정상적으로 밀고나가려면 무엇보다 마땅한 사무장소와 활동장소가 있어야 하였기에 그는 사회구역내 한 주재단위의 작은 회의실을 빌어 간소하게 사무실로 꾸민후 사업을 정규화, 규범화, 제도화에로 차츰 끌어올리며 민생사안들을 접수하고 착실히 풀어나가며 활발하고 다채로운 문화활동들로 흡인력있게 주민들의 참여적극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적인 창업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자금과 활동경비 마련에 떨쳐나섰습니다. 일체 적극적인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음식가공봉사업, 대외봉사식당, 낡은옷가공부 등 경제실체를 일떠세우고 선후로 가동하여 년간 경제수익을 10여만원에까지 도달시켰습니다. 경제적밑바탕이 든든해지자 전시 12개 사회구역에서 선참으로 그럴듯한 사무실과 활동실을 자체의 힘으로 마련하였습니다. 
       그는 또 당원간부들의 적극성, 창발성을 불러일으키기에 많은 힘을 기울여 조장들을 비롯한 사업일군들의 생일이며 집안 대소사까지 일일이 챙겨주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의 로고를 제때에 인정해주고 표창장려해주며 간부대오의 응집력을 높이고 그들의 선봉역할을 충분히 발휘시키기에 진력하였습니다. 당원간부들이 앞장에서 실천적모범을 보이자 사회구역사업은 제궤도에 올라 절도있고 활기차게 잘 진척돼나갔습니다. 경제실체운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꽃공예 등 다양한 기술양성활동도 활발히 벌려 자주창업 적극성도 힘있게 불러일으켰고 뒤이어 민생봉사실체도 하나둘 내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편리를 주면서 빈곤부축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전문인원을 배치하여 장애인재활쎈터와 장애인특수학교를 운영하며 장애인들과 장애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봉사도 해주고 가정복무소, 양로봉사소 등을 운영하며 독거로인들이나 불쌍한 로인들에게 가정의 따사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애심쌀독, 애심기부금상자, 애심생필품함, 애심도시락전달 등 사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애심활동도 폭넓게 펼치며 어렵고 힘든 약세군체들을 위하여 많은 사랑과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가을철이면 주민들을 동원하여 배추김치를 많이 담구어 장애인가정, 독신가정, 독거로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것과 같은 감동적인 사례는 많고도 많습니다. 이밖에 또 민족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명절이나 주제활동을 계기로 민속놀이, 문체오락, 음식나누기, 집체회갑축수, 관광고찰, 위로방문 등 다양한 문화활동과 문화공익활동을 통하여 민족간의 상호 료해를 증진하고 감정을 두터이하면서 문성사회구역으로 하여금 화기애애하고 사랑으로 충만된 하나의 민족대가정으로 웃음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차넘치게 하였습니다.
       전국부녀련합회기층조직건설시범사회구역, 전국종합재해감소시범사회구역, 성민족단결선진집체, 성선진조화로운사회구역 등 높은 집단영예를 수많이 받아안았을뿐만아니라 최금옥서기 자신도 주사회구역건설선진개인, 주 첫패10대문명연변인, 주빈곤부축선진개인, 첫패10대녀성강자 등 높은 영예외에도 새일대관심사업선진개인. 로령화사업선진개인 등 기타 부류의 영예들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받아안았습니다. 지난해에는 성우수지원자 영예를 받아안았고 올해에는 또 주우수당무사업일군기준병 영예칭호와 성우수당무사업일군의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최금옥서기는 사회생활에 못지 않게 가정생활에서도 많은 모범을 보여주었는데 오갈데 없는 친정 조카들을 오래동안 잘 보살펴주었는가 하면 시부모님을 잘 모시는 효부로도 소문높아 2014년에 주5호문명가정기준병의 영예를 영광스럽게 받아안기도 하였습니다.
       부모같은 훌륭한 당원간부로서 인간미와 인격적매력이 다분한 최금옥서기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지만 자기의 재혼문제만은 가슴속깊이 묻어둔채 근 20년이 되도록 홀로 지내오고있습니다. 애초에 힘든 사회구역사업을 선택하지 않고 한국로무를 나가거나 대도시 또는 연해도시에 진출해 개인창업을 하였더라면 지금쯤은 아마 큰 부자로 되여 호강을 누리고있을텐데 라며 주변에서는 진정어린 감복을 내비치군 합니다. 아버지없이 불쌍하게 자란 외아들이 심양에서 공부할 때 갑자기 급성맹장으로 급히 수술한다는 련락을 받고도 자매결연을 맺은 갑산소학교의 빈곤한 농촌학생들과의 약속때문에 애끓는 가슴을 붙안고 할수 없이 남동생을 대신 보낸 미안한 마음과 아픔을 안고 지내온 최금옥서기입니다. 그도 피와 살이 있고 정이 많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시종 남들에 대한 친절과 배려를 앞자리에 놓고 자기를 희생해오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온 최금옥서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합격된 공산당원의 본색이며 한 우수당무사업일군의 빛나는 형상입니다. 최금옥서기처럼 선량한 마음과 사람됨됨이부터 갖춘 당원간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는 세상은 더욱 밝고 더욱 살기 좋아질것이며 미래는 희망으로 더욱 아름답게 펼쳐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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