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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의 전설이 묻힌 천보산

2019년06월06일 09:04
출처: 길림신문   조회수:600

천보산, 일명 산모양에 따라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

이번 주말 자전거려행코스는 천보산(天宝山)이였다.

룡정시경내에 있는 천보산은 이름만 들어도 무슨 보물인가 숨겨져 있을듯 싶은 지명이다. 천보산이라는 이름은 내 인상속에 80년대초인가부터 들어와 있었다. 호도거리로 셈평이 펴이면서 농촌마을들에도 텔레비죤 안테나들이 키자랑하기 시작했는데 천보산중계소에서 보내는 텔레비죤 신호와 맞춘다고 들었다.

지금은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지만 수신효과가 안좋았던 그때 그 시절 천보산에서 보내온다는 텔레비죤신호는 농촌사람들이 저녁이면 찾아헤매는 보물같은 것이였다. 안테나를 밤늦게까지 이리저리 돌려보았던 추억은 마치 열심히 찾다보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귀한 보물을 찾아 헤맸던 즐거운 기억같기도 하다.

아침 8시가 넘어 길을 떠났다. 연길에서 천보산까지는 60키로메터가 넘는 길이다. 모두들 자전거페달을 힘있게 밟았고 새롭고 낯선 곳을 향해 출발한다는 들뜬 기분으로 속도를 냈다. 장도자전거려행팀의 최춘대장이 팀원들에게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힘을 비축할것을 주문했다. 천보산자전거려행은 늘찬 오르막길을 톺아야 하는 힘든 시련과 어려움이 남아 있기에 체력을 조절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조양천을 지나 동불사에 이르고 다시 로투구에서 천보산 마을까지 가는 데는 두시간도 채 안걸렸다.

천보산은 일찍 중국의 8대 광산의 하나로 유명했는데 유색금속 매장량이나 광산의 개발력사에서나 모두 전국적으로 소문났다.

력사자료에 따르면 천보산은 일찍 금나라시기부터 녀진인들이 이곳에서 광산을 개발하고 은을 제련, 청나라 초기에 이곳을 사냥터로 봉하고 광서초기에 은광을 개발하면서부터 자연부락이 서기 시작했다.

천보산진 주요거리인 천보로의 80년대 사진

천보산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천보산의 지명이 1888년경에 길림장군으로 있던 장순이 북경에 가서 천보산 은 2만4000냥을 서태후에게 진상했고 그때 서태후가 “훈춘천보산광무국”이라는 은광명칭을 지어 준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름처럼 천보산에는 풍부한 광물자원이 매장되여 있었다.“연길변무보고”등 사료에는 천보산은 동북 3성에서 으뜸가는 은광이 있으며 동광은 물론 연도 제련했다고 기재되여 있다. 천보산초기광산개발자인 정광제가 10여년사이에 백은 180만냥을 캐서 횡재했다는 기록도 있다.

천보산은 그야말로 보물이 묻힌 땅이였다. 천보산의 풍부한 광물자원에 눈독들인 일본침략자들의 아픈 수탈의 력사도 그래서 생겨났다. 1916년 일본인들이 천보산 동은광채벌권과 경영권을 독점하면서 동생산을 위주로 은도 생산했는데 년간 광석채굴량이 30만톤에 달했다고 한다.

“동북3성현정세”의 기록에 따르면 “민국13년 (1924년)에 일본이 두만강에서 천보산까지 경편철도를 부설하고 모든 것을 실어내가고 있으며 많은 일본사람들이 이주해와서 번창한 시가지로 되였다.”고 적고 있다. 은광채굴이 호황이던 당시 매일 은 800냥을 캐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귀중한 광산자원들이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수탈되여 갔을지 모를 일이다.

천보산전적지 기념비

천보산마을입구에 들어서기전 혁명렬사기념비와 함께 천보산전적지 기념비를 만날수 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에 대한 타격과 적구 인민들의 혁명투지를 고무한 항일련군의 한차례 전투를 기념한 것이였다.

《연변혁명렬사유적지》 기록에 따르면 1939년 6월 동북항일련군 제2군 등 여러 항일부대가 천보산광무국과 광산사무소를 습격하여 대량의 량식과 의복, 신발, 현금, 총과 탄약을 로획했다. 이 습격전으로 광산이 1년 넘게 정지되였으며 항일혁명에 고무된 50여명의 광부들이 항일련군에 용약 가입하였다.

천보산광산은 해방후에도 많은 이야기들을 력사속에 남기고 있었다. 광산회복건설시기인 지난 50년대 초에는 항미원조전쟁을 지지하여 전 광산의 종업원과 가족들이 돈을 모아 지원군에 “천보산호”분기식전투기 한대와 “원조호”대포 1문을 지원했다는 자랑찬 력사도 있었다.

천보산광산은 60년대초에 일처리 광석량이 2000톤에 달해 전국유색금속계통의 8대광산의 하나로 되였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천보산광산은 다년간의 채굴로 자원이 고갈되고 광석품질이 낮아졌으며 생산원가가 높고 자금류통이 어려워진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02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파산으로 문을 닫게 되였다…

한때는 호황을 누렸을 천보산식료품상점

오전 11시가 채 안되여 우리 일행이 천보산에 도착했을 때 가는곳마다 텅 빈집들과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천보산광산이 파산되고 문을 닫게 된 것과 오랜 채굴로 주민구의 안전우환문제 그리고 주민들의 도시진출, 해외진출 등으로 인구가 급감하게 된 것이 주원인이다. 특히 최근들어 룡정시에 천보산이주민들을 위한 주택구가 세워지면서 많은 주민들이 이사갔다고 한다. 이제 천보산 마을은 전면적인 파가이주의 범위에 들어 주민들이 떠나가고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마을이 되였다.

모두 떠나간 마을에 아직 남아있는 마을 주민들

길가에 마침 자그마한 상점이 하나 있어 일행은 다리쉼도 하고 물도 마실 겸 들렀다. 아직 천보산에 남아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상점주인은 사천적 녀인이였는데 남들이 다 떠나가도 자기는 천보산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천보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살아온 세월에 정이 들고 때가 묻은 고장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처럼 떠나기 아쉬운가부다.

세월의 흔적처럼 남아있는 문화대혁명시기의 혁명적 구호들

천보산진거리는 비록 황페해졌지만 과거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건축물들도 많이 보였다. 천보산의 중심거리였다는 천보로의 길옆에는 누렇게 퇴색한 “천보산식료품제일상점”간판이 아직도 걸려있어 한때 번화했고 흥성했던 천보산의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붕이 사라져버린 천보산영화관의 벽면에는 문화대혁명시절에 류행했던 혁명적구호들이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었다.

황페해진 천보산 거리와 마을을 뒤로 하고 이번 자전거려행의 목적지인 삼각산 정상을 향해 페달을 디뎠다. 천보산은 산의 형태에 따라 일명 삼각산이라고 하는데 해발고가 1074메터이다. 연변지역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은 산중의 하나인 천보산은 그 때문에 산꼭대기에 연변라지오텔레비죤중계방송국이 세워져 있다.

천보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

삼각산기슭에서부터 정상까지는 8키로메터라고 했다. 그리 가파로운 길은 아니지만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타고 뻗어 올라간 산길은 사람의 체력과 의지를 고험하기에 충분했다. 기여오르듯이 힘겹게 톺아야 하는 고된 산행길이였다. 다들 땀벌창이 되고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다. 어떤 사람은 아예 웃통을 벗어버리고 오르막길 도전에 나섰다. 한시간 남짓이 톺아서야 겨우 정상에 세워진 중계방송국의 수신탑이 보였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중계방송국 울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전망대가 있다는 것이였다. 최춘대장이 지인을 통해 울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마중나온 연변라지오텔레비죤중계방송국 김광 부국장의 안내로 일행은 중계방송국을 둘러보았다.

천보산정상에서 연길쪽으로 바라본 풍경

역시 천보산은 높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멀리 연길방향의 삼봉동지형까지 보이고 뭇산들 사이로 옹기종기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들도 한눈에 안겨온다.

김광 부국장에 따르면 연변라지오텔레비죤중계방송국에서는 연변의 8개 현시를 대상으로 방송, 텔레비죤신호 중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지의 물은 광산지구이다보니 중금속이 표준을 초과해서 마실 수없어 산아래에 가서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바람부는 날이면 광산의 먼지가 뽀얗게 휘날리고 산정상이다보니 바람이 차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운 환경과 조건하에서도 연변의 청중 및 시청자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천보산중계방송인들의 묵묵한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런데 천보산정상에서는 재미있는 표지석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삼각면으로 된 경계비인데 북쪽방향은 안도현이고 서쪽은 화룡시, 동남쪽은 룡정시라고 한다. 한 지점에서 3개현시의 땅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1994년도에 국무원에서 세웠다고 하는 이 경계비는 천보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였다…

올라갈 때는 혀를 가로물 지경으로 힘이 들더니만 산을 내려올 때는 눈깜짝할사이에 내렸다. 천보산 주민구역도 산에서 내려오는 가속도때문에 스치듯 지나고 속도가 늦춰질무렵 어느새 천보산구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100년도 더 되는 오래된 력사를 품고 있는 광산과 이제 파가이주로 모두 떠나가야 하는 마을과 사람들… 한때 보물이 묻힌 산으로 크게 유명세를 탔던 천보산은 이제 아무런 유혹도 없이 사람들의 시야속으로 사라지고 력사속에 묻혀버리게 된다. 

천보산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라지오텔레비죤중계방송국.

문득 천보산주봉에서 바라 보았던 연변라지오텔레비죤중계방송국의 높이 솟은 발수신안테나들이 떠올랐다. 일년 사시장철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방송과 텔레비죤신호를 받고 또 내보내면서 연변의 8개 현시 주민들에게 보물보다 더 값진 정신적식량을 제공해주는 천보산정상의 중계방송국, 어찌보면 하늘이 내려주는 보물을 안고 있는 천보산의 지명이 이제 새로운 전설로 다시 태여나고 있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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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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