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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기억속의 연변] 1954년, 조선족청년 려근택 국제성회에 참가하다

2019년10월09일 16:19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216

조선족청년 려근택은 연길현 동성향 해란촌 사람이다. 20세기 50,60년대, 려근택은 전국 귀향지식청년 로력모범이자 길림성의 유명한 농업전문가였다.

1951년 봄, 려근택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벼 육종 연구에 매진하면서 “정조식(正条式)”모내기 방법을 리용해 헥타르당(每垧地) 생산량을 전해에 비해 1000kg 증가시켰다. 그의 품앗이반(互助组)은 현급 수전농업 3등 모범반으로 선정되였다. 그는 농업기술개량실험을 광범하게 전개하면서 여러해동안 련속 벼 증산을 실현하였으며 군중으로부터 “해란촌의 미추린(海兰村的米丘林)”으로 불리웠다. 이는 연변지방 당위원회 서기 주덕해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주덕해는 신문사 기자를 안배해 려근택을 취재보도하게 했다. 이후 인민일보 등 당 기관지, 당 간행물에서도 여러차례 려근택의 사적을 보도하였다.

1952년 1월 6일, 공청단 연변지방위원회는 연길에서 귀향지식청년 려근택의 선진사적보고회를 개최했다. 여러민족 각계 단원청년(团员青年) 1500여명이 이번 보고회에 출석하였다.

1952년부터 1954년까지 려근택은 한곳의 토지를 선택하여 비료성능, 각종 재배법과 우량품종 실험을 진행하였다. 1953년, <<비료의 삼요소>>(肥料的三要素)서적을 편찬하고 과학적인 퇴비기술로 작물성장을 추진하여 량식 생산량을 제고할 수 있다고 했다. 1953년, 촌에서는 농업생산합작사를 설립하고 려근택을 주임으로 선거했다.

1954년 11월, 려근택은 중국농촌대표단 성원으로 오지리 비엔나에서 개최된 세계농촌청년 대표대회에 참가하였다. 1955년, 그는 전국청년사회주의건설 열성분자(全国青年社会主义建设积极分子) 칭호를 수여받고 같은 해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58년, 려근택은 <<벼재배기술문답>> 서적을 출판해 다시한번 전국청년사회주의건설 열성분자 칭호를 수여받았다. 1961년, 그가 재배한 벼는 헥타르당(15무)에 수확고가 만근을 넘겼다. 이후에도 그는 생산기술을 부단히 개량하여 벼 생산량을 올렸다.

1965년, 려근택은 연변을 떠나 선후로 농안현경독대학(农安县耕读大学) 부교장, 농안현 농업 및 목축업국 부국장을 맡았고 1971년 장춘시농업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임명되였다. 1978년, 려근택은 전국벼재배 새기술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이후 그는 “장춘3호” “장춘4호” “장륙1호”등 벼 신품종 연구, 재배에 성공하였으며 구태, 쌍양, 덕혜, 유수, 농안 등 지역에 널리 보급하여 단위당 수확고를 보편적으로 제고하였다. 길림성과학대회는 려근택이 연구한 새품종을 우량품종에 렬거하고 려근택에게 우량품종상을 수여했다.


출처: 연변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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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수진]
태그: 1953  1954  1952  团员青年  米丘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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