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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사: 항미원조 로전사 최봉천의 '가국기억'

2020년10월21일 09:1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232

현재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살고 있는 최봉천은 항미원조 로전사이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세월은 아흔살이 넘는 이 로전사에게 일생의 군대기억을 남겨주었다. 특히 팔에 새겨진 ’끝까지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문구는 그의 마음속에 마멸될 수 없는 국가신념을 아로새겨주었다.

최봉천은 1929년에 안도현의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나라와 고향을 지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던 그는 19살이 되던 해 촌의 청년들을 동원해 함께 입대했다. 1948년 4월 9일 그는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독립3퇀 포병련의 포병사수가 되였다. 

1949년 9월, 미군은 3대의 전투기를 출동해 길림 송화강철교 상공에서 맹렬히 폭격했다. 최봉천은 명령을 받고 송화강철교 보수에 참가해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으며 해방전쟁중 송화강철교를 수복하는 전역에서 2등 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새중국이 건설된 후 최봉천이 있던 부대는 1950년 6월에 단동을 거쳐 조선평양에 도착해 조선전쟁을 지원했다. 한번의 임무에서 최봉천과 전우들은 원주시 교외에 있는 철교와 철교턴넬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였다. 

최봉천 로전사

"반에 모두 14명이 있었는데 함께 손을 들고 선언을 했습니다. 선언에는 결심을 굳히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역을 치를 때 저는 입당 열성분자였습니다. 전역에서 반드시 입당을 쟁취하고 자신의 생명으로 전투를 치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반장이였던 최봉천과 부반장은 무조건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결심을 표하려고 팔에 ’끝까지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문구를 새겼다.

이 전역에서 그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머리와 허리를 크게 다쳤고 평양병원에서 근 한달간의 치료를 받았다. 전쟁이 평정되자 부대에서는 립공대회를 열었으며 그는 3급 국기공훈을 수여받았다.

최봉천 로전사

"우리의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였기에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해방군 전사들은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1957년 7월1일 최봉천은 정식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진정한 공산당원이 되였다. 최봉천은 자녀들한테 항상 오늘의 행복은 쉽게 온 것이 아니라고 교육했다. 

최봉천 로전사

"과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후대들을 잘 교육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좋고 먹고 입는 것이 좋은 것은 어떻게 왔는가? 나는 여섯명의 자녀가 있는데 자녀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남은 장애인 군인 아버지를 잊지 말아야 된다고 특히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과 희생된 혁명선렬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희생되고 무슨 원인으로 희생됐는가? 그래서 아버지의 길을 계승하고 혁명선렬들의 길을 계승해야 하며 나쁜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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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지구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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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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