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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기억 | 주덕해 자녀, 연변의 정 이야기하다

2022년05월26일 15:2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조회수:1221

이는 20세기 50년대말 혹은 60년대초 음력설에 연길시에서 찍은 귀중한 사진이다. 이 사진 속 중산복 차림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남성은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 제1임 주당위 서기이며 주장인 주덕해(본명: 오기섭)이고 옆에는 그의 부인과 네 자녀이다.

오영채(뒤줄 중간), 오양청(앞줄 왼쪽 첫번째)

주덕해는 연변의 경제번영, 문화발전, 민족단결과 변방공고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을 맞으며 기자는 주덕해의 딸 오영채와 아들 오양청과 련계를 취하게 되였다. 오영채는 이 사진을 제공했다. 오양청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연변의 정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오양청은 1954년에 연길에서 태여났고 1969년 온가족이 아버지를 따라 호북 무한으로 이사갔다. 197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같은해 온가족이 다시 장춘으로 돌아왔다. 오양청이 아버지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은 아버지는 항상 업무로 바삐 보냈다고 한다.

주덕해는 늘 일하느라 바삐 보냈고 항상 군중을 념려했다. 그는 기층에 내려가 방문하거나 성 회의에 참가할 때가 많아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덕해는 늘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특수화'를 부려서는 안된다고 엄격히 요구했다. 학교에 가서 먹는 도시락의 기준도 다른 동학들과 같아야 했고 옷이 해지면 수선해 입었으며 생활조건이 조금도 우월해서는 안되였다. 아버지의 간부신분으로 특권을 누려서는 더더욱 안된다고 했다. 부모님의 고상한 인성과 사업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엄격한 환경속에서 자란 오양청은 중국과학원 장춘물리연구소에서 퇴직할 때까지 착실하게 일했다.

연변에서 생활한 지 어언 10여년, 형제 네명은 이곳의 산수와 초목에 대해 깊은 친밀감을 갖고 있다. 해마다 청명, 추석이면 그들은 연길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여러날 묵다가 돌아가군 한다. 특히 오양청은 여름에 시간이 날 때면 연변에 와서 몇달간 머물면서 친구도 만나고 각 현(시)도 돌아다니며 연변의 새로운 변화를 만끽하군 한다. "연변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도시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좋고 여러 민족이 단결, 융합되였습니다. 저는 이곳을 매우 좋아합니다."

"례년 5월이면 저는 항상 연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의 영향으로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전염병 상황이 나아지면 꼭 가보렵니다." 오양청은 대화에서 연변에 대한 그리움과 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 기회를 빌어 연변이 날로 아름다워지기를 진심으로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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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변조간신문

편역: 오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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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吴艺花]
태그: 延边  吴阳青  朱德  补丁  吴瑛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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