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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기억-4] 도자록음기술을 전국에 보급

2022년06월06일 16:27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20세기 50년대에 조선어로 번역된 국산영화는 많은 연변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알아듣기 쉽고 기억에 남아 그만큼 정감도 깊었던 것이다. 때문에 연변소수민족어영화 역제작업은 아주 중요했는바 소수민족군중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소수민족군중들이 당의 소리를 듣고 당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그들의 문화생활을 더욱 풍부히 해주었다. 

도자(涂磁)록음단계 

영화가 처음 연변에서 방영된 것은 1920년 무렵이였다. 당시는 상인들이 외지로부터 영화필림을 빌려다가 방영했는데 흑백의 무성 영화였다. 1951년 8월 연변주 사상 첫 전문적인 농촌영화방영팀인 연길현(현재의 룡정시)중쏘우호협회방영팀이 성립되였다. 이 영화방영팀은 당시 전 주 각지에서 활약하면서 많은 농민벗들의 환영을 받았다. 1953년 길림성문화국은 연변 농촌을 위해 6개 영화방영팀을 건립하고 성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했다. 같은 해 3월 3일 제1진 조선어역제 국산영화 《풍수》, 《남정북전(南征北战)》이 연변 각지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1955년부터 연변농촌영화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주당위선전부 출판과저작권처 처장 김빙(金凭)은 일찍 주라지오영화텔레비죤국 영화관리처에서 근무했다. 그는, 조선어영화역제사업은 주로 3개 발전단계를 거쳐왔는데 각각 1950-1965년 구두어대화해설단계, 1965-1990년 필림도자록음단계, 2010년-현재 영화디지털화역제단계라고 소개했다. 앞의 두 단계는 원 연변영화발행방영공사에서 구체적으로 책임졌는데 필림도자록음단계에 영화1254부를 역제했다. 연변의 도자록음기술은 전국적으로도 앞자리를 차지했으며 전국 기타 소수민족지역에 보급되였다. 미국, 조선, 일본의 우호인사 및 국내 서장 내몽골, 호남 등 지역 소수민족영화사업일군들이 분분이 연변을 찾아 참관학습하고 역제사업을 고찰했다. 기자는 연변조선어영화역제사업의 '휘황시기'에 근무했던 역제인원 김광현을 만나보았다. 20세기 80년대초 김광현은 연변영화발행방영공사에 취직하여 성우를 맡았다. 당시 조선어영화역제사업은 최초에 영화방영시 역제인원들이 현장에서 구두어대화를 하던 데로부터 필림도자록음으로 발전했다. 김광현은 당시 회사에 번역일군 6, 7명과 성우 10명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영화 한편을 번역하고 배음, 록음까지 마치는 데는 약 한주동안의 시간이 걸렸고 한해에 70-80부 영화의 역제사업을 완수했다. 영화를 역제한 후 회사에서는 늘 농촌지역에 가서 공익방영하고 군중들의 평가와 의견을 징집했다. 김광현은 "필림도자록음기술은 연변이 발명한 것이고 당시 전국적으로도 가장 선진적이였다. 우리 연변의 역제사업은 문화부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표창을 수차례 받았고 선후로 민족어영화역제, 발행방영 선진집체상과 이야기영화, 과학교육영화 역제상 등 여러 상들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림도자록음기술을 떠올리면서 자부심으로 가득찼다. 1990년이후 중국영화산업이 저조기에 들어서면서 역제경비도 '단절'됐고 연변조선어영화역제사업은 장시기동안 정체되였다. 2009년 농촌소수민족군중의 영화관람수요에 만족을 주기 위해 국가라지오텔레비죤방송총국은 민족어영화역제사업을 재가동하고 9개 소수민족지역에 영화디지털화역제설비를 발급했으며 영화역제기술도 디지털화역제단계에 들어섰다. 그때로부터 이 기술은 지금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출처:  연변조간신문

편역: 김성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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