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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성, "중국인민해방군군가"를 창작하다

2022년08월01일 09:55
출처: 연변라지오TV넷 연변뉴스APP  

오늘은 건군절이다. 건군절, 국경절 우리나라의 중대 기념일마다 빠지지 않는 음악, 듣기만 해도 힘이 솟고 박진감 넘치는 곡조, 바로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이다.

순박한 노래말에 간결하면서도 박진감 있는 곡조와 격정 넘치는 선률로 이뤄진 이 노래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공목 시인과 천재 작곡가로 불리는 정률성이 함께 지은 “팔로군행진곡”이다. 이 곡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 무장력량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용함과 불굴의 정신력, 호기로운 기세를 재현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해......”

당시의 “팔로군행진곡”이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불려지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이 노래를 부르며 일본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고 이 노래를 부르며 천안문 광장에서 모주석의 검열을 받았다.

오랜시간 무수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불려진 군가, 무수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 군가,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5주년을 맞은 오늘, 불후의 음악가 정률성을 회억하며 “군가에 깃든 옛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사명일 것이다.

[중국공산당백년실록] 정률성, "중국인민해방군군가"를 창작하다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은 원명이 "팔로군진행곡"이며 음악가 정률성이 작곡하고 시인 공목이 작사하였다. 1938년, 28세의 청년시인 공목은 혁명리상을 가슴에 품고 연안으로 왔으며 항일군정대학에서 음악교원으로 일하던, 자신보다 4살 어린 정률성을 알게 되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전공과 특장으로 항일전쟁을 위해 전민족이 싸움터로 나가는 나팔소리를 울리려고 결심하였다.


군사박물관 원 편집연구처 처장 강정옥:

"정률성은 1933년 중국에 왔는데 처음에는 남녕에 있다가 후에 상해로 왔으며 상해지하당의 한 동지를 알게 되였습니다. 그 동지의 소개로 연안에 갔으며 연안의 혁명적분위기에 감동되여 일련의 곡들을 창작했습니다."


음악가, "중국인민해방군군가" 작곡가 정률성

연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률성을 천재적작곡가라고 불렀고 정률성도 창작과정을 즐겼다. 정률성의 딸 정소제는 항일전쟁시기 영용한 팔로군은 늘 부친의 창작열을 끓어오르게 했다다고 소개했다.


정률성의 딸 정소제:

"평형관대첩과 줄줄이 이어지는 첩보를 노래로 표현하고 싶어했고 작곡하고 싶어했습니다."


시인, "중국인민해방군군가"작사자 공목

1939년, 음악가 선성해가 창작한 "황하대합창"은 연안에 울려퍼졌고 정률성을 깊이 감동시켰다. 같은해 4,5월 정률성은 "팔로군대합창"을 쓰기로 작심하고 공목을 찾아가 작사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8월경, "팔로군대합창" 가사가 완성되였다. 공목의 부인 오상 녀사는 당시 연안의 조건은 매우 간고했는데 정률성은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작곡하였다고 말했다.


공목의 부인 오상:

"정률성은 다른 악기가 없고 작은 바이올린만 있었습니다. 책상을 두드리거나 바위를 두드리면서 곡을 완성하였지요."

1939년 겨울, "팔로군행진곡"이 연안 중앙대례당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씩씩하고 웅장한 군가의 멜로디는 많은 관중을 진감시켰고 전 중국에서 울려퍼졌으며 항일전사들이 영용히 싸우는 나팔소리로 되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후 "팔로군진행곡"은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으로 개명되였다. 1988년 7월 25일, 당중앙의 비준으로 중앙군사위원회는 정식으로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을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결정했다.

-2021년 央广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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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韩奇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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